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6) <노름꾼>

우현 띵호와 2021. 10. 5. 01:59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6) <노름꾼>

노름에 빠져 가산 탕진한 젊은이

타향 떠돌다 집에 돌아오니…마누라는 도망가고 노모는 타계

노름 끊겠다며 손가락 아홉개 자르고,

절에 들어가 삭발까지 했는데…

탁발을 마친 노스님이 절로 돌아가다가

고갯마루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눈 아래 펼쳐진 괴상한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자 높이도 안되는 초라한 봉분 앞에서 삐쩍 마른 젊은이가

허리에 찬 수건을 펼쳐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젊은이는 그것을 놓고 큰절을 세번 하더니 묘 앞에 풀썩 쓰러져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더니 곧 너무나 섧게 울었다.

구곡간장이 끊어질 듯 젊은이의 통곡소리는 쉼없이 이어졌다.
노스님이 조용히 다가갔다.

“똑똑 또르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으악!”

노스님은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수건 위에 놓인 제사음식이라는게 달랑 손가락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노스님의 놀란 고함소리에 엎드려 울던 젊은이가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손을 광목 쪼가리로 칭칭 감은 걸 보니

제사음식(?) 손가락은 바로 그 젊은이 것이었다.

“여보게, 무슨 연유로 손가락을 끊어놓고 절을 하며,

산천도 따라 울도록 그렇게 통곡하는가?”

입 뗄 생각을 않던 젊은이가 한참 후 긴 한숨을 토했다.

그러고선 20여년 전으로 돌아가 얘기를 시작했다.

젊은이의 이름은 오준, 살림살이가 토실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서당에 가면 “오늘 훈장님이 하품을 몇번 하실까?

알아맞힌 사람이 판돈을 싹쓸이 하기! 자~, 일전씩 걸어.”

그렇다. 오준은 뭐든지 내기를 걸었다.

열대여섯살부터는 동네 주막집 노름판에 끼기 시작했다.

골패에 관한 한 오준을 따라잡을 노름꾼이 없었다.

그는 돈을 따면 목에 힘을 잔뜩 주고선 친구들을 기생집으로,

유곽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대처로 진출했는데, 큰 노름판도 별것 아니었다.

그의 골패 솜씨는 신출귀몰해 노름판을 싹쓸이했다.

세번을 연달아 노름판을 쓸어버린 오준은 판을 키우자고 제의했다.

노름꾼들은 마지못해 따라왔다. 그런데 그날,

액운이 끼었는지 오준은 왕창 깨졌다.

논 다섯 마지기 판 돈을 들고 다시 대처의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그 돈을 이틀 만에 홀라당 날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문전옥답을 팔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며칠 새 다 날려버렸다.

마누라 앞에서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작두에 손가락 하나를 잘랐다.

어느 날, 똥통에 빠진 꿈을 꾼 오준은 마누라의 금비녀를 훔쳐서

대처의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똥꿈 약발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자신과 담판하며 다시는 노름에 빠지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하나 더 잘라 강물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몇달 지나지 않아 용꿈을 꾸자 급전을 마련해

또 대처 노름판으로 달려갔으나 허사였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한양으로, 제물포로, 평양으로

떠돌아다니다 5년 만에 귀향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을 만날까봐 뒷산에 숨어 있다가 어둠살이 내린 후

집에 갔다. 집은 폐가로 변했고, 마누라는 진즉에 도망가버렸다.

연로한 어머니 혼자 호롱불 아래서 삯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그날 밤, 오준은 장롱 속의 돈을 훔쳐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3년 후, 집에 다시 돌아오니 어머니는 이승을 하직했다.

그래서 왼손 엄지와 검지 단 두개 남은 손가락 중 검지를 작두로 잘라

어머니 산소에 올렸다는 것이다.

오준이 말을 마치며 스님에게 손을 펴 보이는데 왼손 엄지 하나 빼고선

아홉개가 없었다.

오준은 그날 스님을 따라 절로 들어가 삭발을 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른 어느 날, 불심 깊은 부잣집 마님이

금동촛대 한쌍을 불전에 바쳤다. 이를 본 오준은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스님이 오준에게 관솔을 쪼개라고 일을 시키는 게 아닌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오준은 손도끼로 관솔을 쪼개다가

그만 하나 남은 왼손 엄지를 찍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