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분서갱유(焚書坑儒)

우현 띵호와 2022. 6. 25. 19:37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시황이 민간의 서적을 불사르고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
[불사를 분(火/8) 글 서(曰/6) 구덩이 갱(土/4) 선비 유(亻/14)]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인 三皇(삼황)과 五帝(오제)로 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데 皇帝(황제)는 여기서 따왔다.

최초의 始皇帝(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한 秦(진)나라의

 嬴政(영정)이 스스로 칭해 秦始皇(진시황)이 됐다.

성군인 삼황오제의 기운을 잇는다고 한 진시황은 

최초의 통일제국 완성, 군현제 실시로 강력한 중앙집권정책 시행,

이민족을 물리치고 만리장성 건설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덮고 진시황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폭정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책을 불태우고(焚書), 

유생들을 한 구덩이에 묻어 죽인(坑儒) 일이다. 

진시황을 가리킨 祖龍之虐(조룡지학)이나 秦火(진화)라 해도 같다.
 
이 두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아니고 

‘史記(사기)’나 ‘戰國策(전국책)’ 등 여러 곳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기원전 219년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는 楚(초) 출신의

지략가 李斯(이사)의 건의로 군현제를 실시하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다스렸다.

몇 년이 지나자 권력에서 멀어진
왕족과 세력가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이사가 상소를 올려 이전에는 천하를 통일할 강력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군웅이 할거했으나 

이제는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설을 막으려면 의약과 농업 등 필수적인 것을 

제외하고 불태워야 한다고 했다. 

진언을 옳게 여긴 황제는 죽간과 목책 등을 모두

 수거한 뒤 불을 질렀다.
 
시황제가 나이가 들어 불로장생의 신선술에 관심을 갖고

 방사들을 초청해 후대했다.

徐福(서복)이라고도 하는 徐市(서불, 市은 치마 불)은 

불사약을 구한다며 사라졌고, 盧生(노생)과 侯生(후생)

이라는 방사는 많은 재물을 사취하고서 진시황의 

부덕을 비난했다.
 
분노한 진시황은 비방하는 서생들을 함께 몰아 460여 명을 

咸陽(함양) 성 밖의 구덩이에 산채로 묻어버렸다. 

서기전 212년의 일이었다.

각각의일이 성어로 한곳에 쓰인 것은 前漢(전한)의 학자

 孔安國(공안국)의 ‘尙書序(상서서)’라 한다.

‘선대의 전적을 모두 없애고 서적을 불태웠으며 

유학자들을 산 채로 묻어버렸다

(滅先代典 焚書坑儒/
멸선대전 분서갱유).’
 
학정을 숨기고 불평불만을 잠재우려는 

권력자의 학정이 종종 여기에 비유된다. 

최근에는 당나라 시인 章碣(장갈)의 ‘焚書坑(분서갱)’이 화제가 됐다.
‘죽간 비단의 연기 없어지자 제국도 허공으로

(竹帛煙消帝業虛/
죽백연소제업허)’
사라졌는데 정작 뒤에 나타난

‘유방과 항우는 원래 책을 읽지도 않았다네

(劉項元來不讀書/
유항원래부독서)’라며 막아도 소용없다는 비유였다.
이 글을 올린 중국의 기업가가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습근평]을

비판했다고 해석돼 온갖 압박을 받았다.

아무리 입을 막고 눈을 가리려 해도 

음모는 드러나니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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