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파석예(西巴釋麑)
서파가 어린사슴을 놓아주다, 잘못도 달리 보면 취할 점이 있다.
[서녘 서(襾/0) 꼬리 파(己/1) 풀 석(釆/13) 새끼사슴 예(鹿/8)]
잘 사용되지 않는 어려운 한자 麑(예)는 猊(예)와 같이
사자를 뜻하기도 하고, 새끼사슴을 나타낸다.
거기에 西巴(서파)는 지명인 듯해도 사람이름이란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성어는 고사를 알지 못하면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다.
서파라는 사람(西巴)이 어린 사슴을 놓아주었다(釋麑)는 말은 어미 사슴이
계속 따라오며 슬피 우는 바람에 놓아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주인이 사냥한 새끼사슴을 집으로 가져가 요리를 하도록 했는데
서파가 마음대로 풀어주었으니 명령불복이다.
뒤에 다시 불러들여 아들의 스승으로 삼은 것은
그의 사랑을 높이 샀기에 가능했다. 釋麑子傅(석예자부)라고도 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권력자 孟孫(맹손)은
桓公(환공)의 손자인데 곡절이 많았다.
그의 부친 慶父(경보)는 야심이 많아 두 임금을 죽이고 떠돌다 자살했다.
뒤에 僖公(희공, 僖는 즐거울 희)이 아들을 계승시켜 孟孫氏(맹손씨)가 됐다.
이 맹손과 그의 가신 秦西巴(진서파) 등 일행이 잡은 새끼사슴의
이야기가 ‘淮南子(회남자)’에 자세히 나오고 ‘한비자(韓非子)’에도
비유로 사용됐다.
앞의 책은 漢高祖(한고조)의 서손인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과 도사 수천 명을 초청하여 기술한 백과사전격인 책이다.
회남자 人間訓(인간훈) 편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맹손이 어느 때 사냥을 나가서 어린 사슴을 잡았을 때
가신 진서파를 시켜 집에서 요리를 하도록 시켰다.
‘새끼사슴의 어미가 뒤따라오며 슬피 울어 진서파가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풀어 주었다
(麑母隨之而啼 秦西巴弗忍 縱而予之/ 예모수지이제 진서파불인 종이여지).’
맹손이 돌아와 그 말을 듣고 진서파를 궁에서 쫓아냈다.
그 후 맹손의 아들 사부로 진서파를 초빙하니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맹손이 말했다.
‘한 마리 어린사슴조차 뿌리치지 못하는데 사람에겐 오죽하랴
(夫一麑而弗忍 又何況於人乎/ 부일예이불인 우하황어인호)?’
명령은 불복했더라도 어진 마음을 가진 진서파가 아들의 사부로는
적합하다고 봤다.
한비자는 이 사례를
‘진서파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더 신임을 받았다
(秦西巴以有罪益信/ 진서파이유죄익신)’고 하며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속마음을 달리 본 것이다.
진서파의 사랑은 동물에 대해 불쌍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동정심을 나타낸 것으로 사부란 직책을 맡았다.
오늘날 극소수이긴 하지만 어린이집이나 학원에서 학대하는 일이 잦고,
심지어는 부모가 친자녀를 굶기고 죽도록 방치한 일까지 일어났다.
학습능력을 잘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인간성이 훨씬 앞서야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