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 우정이 아주 돈독한 친구 관계
[대롱 관(竹/8) 절인물고기 포(魚/5) 갈 지(丿/3) 사귈 교(亠/4)]
부모에 대한 효만큼 우정을 중시했음인지
아름다운 친구 사이를 기리는 성어가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인용되고 잘 알려진 말이
齊(제)나라의 재상 管仲(관중)과 鮑叔牙(포숙아)의
우정을 뜻하는 管鮑(관포)의 교유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사이라 해도 남들이 비난할 때
사정을 이해하여 변호해주고, 이익을 눈앞에 두고
양보할 수 있는 사이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그것을 모두 실천하여
그 향취가 후세까지 이르고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관중은 자기를 먼저 아는 이기주의자이고,
포숙아는 친구를 위해 무엇이든 양보하는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포숙아의 꾸준한 배려로 관중은 훌륭한 정책을 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또 친구의 진심을 서로 알아줘 해피엔딩이 되었다.
그래서 관중은 뒷날 그를 평하여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자야)’라고까지 말했다.
司馬遷(사마천)이 쓴 ‘史記(사기)’의 管晏列傳(관안열전)과
左丘明(좌구명)이 지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이 이야기가 전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제나라 사람인 둘은
어릴 때부터 절친한 벗이었다.
자라서 동업을 했을 때 포숙아는 관중보다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에
친구가 속여 이익을 더 가져가도 개의치 않았다.
벼슬에 나가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왕자의 스승으로 있게 됐다.
그러던 중 왕이 피살되는 바람에 왕자를 따라 다른 나라로 피신했다.
다음 해 왕을 살해한 자가 쫓겨나자 포숙아가 수행한 小白(소백)이
관중이 따른 糾(규)보다 먼저 입국하여 왕위 계승을 하게 됐다.
그가 바로 齊桓公(제환공)이다.
나중 春秋五覇(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이 되는 환공은
처음에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관중을 없애려 했다.
그의 능력을 아는 포숙아가 간곡히 만류하자
식견이 높은 환공은 오히려 관중에게 재상을 맡겼다.
관중은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제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포숙아의 자손은 10여대에 걸쳐 제나라에서 이름 있는
대부로 지낼 정도로 신망을 얻었는데
이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그의 현명함을 모두 존경했기 때문이다.
욕심에 찌든 오늘날 기성세대들은 이익 앞에 우정을 팽개친 적이 없었을까. 친구도 모르고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에겐 세월이 더 지나서 이런 관포의 우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