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금소총91-100화

우현 띵호와 2021. 9. 25. 23:01

고금소총91-100화

제91화 어린이답지 않은 어린이(非其兒行)

어떤 사람이 옛친구를 찾아갔으나 집에 없었다.

동자(童子)에게

"너의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 하고 묻자,

"간 곳으로 가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시 물었다.

"너의 나이는 몇 살인고?"

", 저 건너 마을의 석래란 놈과 동갑입니다."

"석래의 나이는 몇 살인고?"

"저와 동갑입니다."

"너는 어찌 그리 어른을 놀리는고? 내 마땅히 너의 불알을 까먹겠다."

"다 큰 아이의 불알도 마구 까먹는 수가 있습니까?"

"어찌 없겠는가?"

그러자 동자는,

"어쩐지 많이 까 잡수신 모양입니다. 턱에 음모(陰毛)가 많이도 나 있습니다."

하고 대꾸하였다.

 

제92화 미모와 재주를 겸한 처녀(才貌無雙)

옛날 서울에 어떤 생원(生員)이 살았으나 나이 들어도 성공하지 못하여

집안이 가난하고 생활도 어려워, 지방의 어떤 읍내에서 훈장(訓長)이 되었다.

4, 5년이 지나 생원이 죽고 다만 그의 처와 나이 18세의 딸이 남아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집 양반이 그 딸이 현명하고 아름다운 것을 듣고 사람을 보내

정혼(定婚)을 하고 혼례를 거행코자 하였다.

그건데 가까운 곳에 사는 읍내 이방()의 아들로서

관아에 통인(通人)으로 다니는 자가 있어 갑자기 생원댁으로 와서,

"이 댁 소저(小姐)는 여러 번 나와 통하였소.

지금 듣자하니 어떤 곳에 정혼을 하였다는 데

나에게 몸을 허락하여 놓고 그것이 되겠소이까?" 하고 말하였다.

처녀의 어머니는 기절초풍하여 얼굴이 흙빛이 되어 딸에게,

"그것이 사실이더냐?" 하고 물었다. 딸은,

"이는 그놈이 저의 자태를 보고, 또한 우리집이 가난하여 약한 것을 보고

간계를 부리는 것이니 상대할 것이 못됩니다.

견디기 보다 관가에 고하여 그 허물을 벗어야 합니다." 하더니

얼굴빛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관가에 가서 고발하였다.

사또는 해괴하게 생각하여,

그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동안 고심하다가

그 통인을 불러,

"네가 그 처자와 여러 번 상통(相通)하였다 하니

그 얼굴과 그 몸 모양을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다. 상세하게 말하라.

틀리면 살아남지 못한다."하고 말하니

통인이 처녀의 용모를 일일이 고하였다.

사또가 통인을 물린 후 처녀를 불러 자세히 보니

과연 통인의 말이 조금도 틀린 데가 없었다.

이것은 남 몰래 사람을 시켜서 미리 그 자세한 것을 알아낸 것이었다.

사또는 크게 놀라 할 말이 없어졌다.

처녀는 이미 통인의 간계로 인하여 사또의 판결이 어려워진 것을 알고,

"소녀의 왼쪽 유방 밑에 큰 밤 만한 검은 점이 있고

그 점 위에 십여 개의 털이 나 있는 데,

이것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일이며,

그가 소녀와 상통하였다 하면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오니 통인에게 이것을 하문(下問)하여 주옵소서." 하고 말하였다.

사또가 곧 통인을 불러들여,

"네가 처녀와 상통하였다 하니 남이 볼 수 없는 곳에 어떤 별다른 것이 없더냐?"

하고 물었다.

쳐녀가 사또에게 좌우 사람을 피하게 요청했을 때

이미 남 몰래 엿듣는 사람이 있었는 데,

그 자가 미리 통인에게 모든 것을 일러준 후이라 통인은 거침없이,

"처녀 왼쪽 유방 밑에 하나의 검은 점이 있고, 그 크기가 큰 밤 만하고

털이 십여개나 있습니다. 이를 증거로 삼아 주옵소서." 하고 대답하니

사또는 크게 놀랐다.

이에 처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옷을 벗고 유방을 내 보이면서 말하였다.

"소녀에게는 본래부터 검은 점이 없는 데,

없는 것을 있다고 한 것은 저 간사한 사람이 틀림없이

사람을 시켜 사또께 아뢴 소녀의 말을 몰래 엿듣게 하여

판결을 내리기 어렵게 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조금 전에 소녀의 용모를 소상하게 말 한 것도

남을 시켜 먼저 정탐하여 교묘하게 고해 바친 것이라 보여지옵니다."

사또는 크게 깨닫고 책상을 내려치며 통인을 엄하게 신문하자

통인은 그제야 할 수 없이 죄를 자백하였다.

사또는 처녀의 재능과 용모가 무쌍한 것을 가상히 여겨,

이미 정혼한 자리를 물렀다는 말을고서 그의 둘째 아들과

며느리고 삼았다.

 

제93화 곧 벼락부자가 되겠는데(終至萬億兆)

어느 옹기장수가 옹기 한 짐을 지고 나무 밑에 쉬며

눈을 지긋이 감고 암산(暗算)을 하면서,

"한푼이 두푼이 되고, 두푼이 네푼 되고,

일전이 이전이 되며, 한짐이 두짐 되고, 한냥이 두냥이

될 것이다. 두냥이 넉냥이 되어서 차차 배()가 되어,

마침내 만억조(萬億兆)에 달하게 되고,

재산이 이처럼 되면 장부가 처세하는데 어찌 아내가 없겠는가?

아내가 있은 후에는 어찌 첩이 없겠는가 ?

이렇게 한 후에 일처일첩(一妻一妾)

대장부의 상사(常事)이니 처첩(妻妾)이 있은

후에 만약 서로 싸운다면 마땅히 이렇게 때려야 한다."

하고 지게작대기로 옹기 그릇을 마구 때려 부순 후에 눈을 뜨고 생각하여 보니

한가지도 이루어진 것은 없고 옹기만 모두 깨어졌을 뿐 만 아니라

지게까지 부셔졌고 다만 옆에 서푼짜리 조그마한 동이 한 개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주워 갖고 가다 길에서 소나기를 만나자

대장간에 들어가 비를 피하며 다시 암산하기를,

"이 서푼짜리 조그만 동이로 육푼을 받고,

육푼으로 그릇 두 개를 사서 일전 두푼을 받으면

차차 곱빼기가 되어서 그 수를 셀 수 없게 되겠지." 하고

머리를 끄덕거리며 의기양양 하는 데,

그것 또한 그만 대장간 화로벽에 부딪쳐 깨어지고 말았다.

 

제94화 생원 댁에 도적이 들다(賊漢入生員宅)

생원이 사는 동네에 포수가 있었다. 포수의 처는 항상 생원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집에 있어서 기회가 없었다.

하루는 생원이 포수를 찾아가서,

"너는 왜 산에 가지를 않느냐?"

하고 묻자 포수는,

"노자가 없어서 가지 못하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자가 얼마나 있으면 산에 갈 수가 있는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적어도 백 냥은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어째서 그렇게 많이 드는고?"

"비단 노자뿐만 아니라 산에 고사도 지내야 하기 때문에 백 냥도 오히려 적습니다."

"내가 그것을 주겠다. 그러나 많은 짐승들을 잡아오면 나와 절반씩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생원이 백 냥을 포수에게 주었다.

포수는 생원이 자기 처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터이라 돈을 받은 후

그의 처와 약속하기를,

"내가 꼭 이렇게 하겠으니 당신 또한 여차여차 하시오."

하고는 생원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소인이 떠나면 집안에 처 혼자 있게 되오니 생원님께서는 수고롭지만 여러가지로

보살펴 주시기 엎드려 바랍니다."

하고 부탁하니 생원이,

"그 일은 내가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조금도 걱정 말라." 하고 대답하였다.

포수가 떠난 그 날 저녁을 먹은 후 생원이

장죽을 비스듬히 물고 포수의 집으로 가서,

"오늘은 네 남편이 없어서 홀로 공방(空房)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생원님 같으신 분이 오시니 무엇이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포수의 처가 이렇게 말하니 생원이 곧 방으로 들어가서

희롱하는 말을 하자 묻는 말에 대답하고

손짓까지 하면서 잘도 주고받고 하니 생원이 자못 기뻐하면서

교합(交合)하자고 유혹하였다.

이에 여인이,

"생원님이 저와 교합하고 싶으신 생각이 있으면

저것을 내려서 얼굴에 동여매십시오.

그렇지 않으시면 듣지 않겠습니다."

하자 생원이,

"저것은 무엇인고? 어디 내어 보이라." 하니

그 여인이 곧 선반 위에 얹어 놓은 가면을 내어 얼굴에 동여매고자 한다.

생원이 물었다.

"이것을 얼굴에 묶으면 왜 좋은가?"

"저는 남편과 동침할 때에는 언제나 이렇게 이것을 얼굴에 묶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흥이 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에 생원이 말샜다.,

"너의 말이 그렇다고 하니 묶어보아라."

여인이 생원에게 가면을 씌운 다음 끈으로

단단히 묶어 풀 수 없이 한 후 희롱하고 있는 데

이때 포수가 뒤뜰에서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서 큰 소리로 외치며,

"어떤 도둑놈이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서 남의 아내를 겁탈하려 하느냐?

이런 놈은 패 죽여야 한다." 하며 짐짓 벽을 치고 들창 문을 치면서 날뛰었다.

생원이 크게 겁을 먹고 가면을 벗으려 하였으나, 목 뒤의 끈이 단단히 얽매어져 있어

벗을 수가 없어 가면을 쓴 채 도망가니 포수가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면서,

"도둑놈이 생원 댁으로 들어간다." 하고 따라갔다.

생원의 집에서는 깜짝 놀라 내다보니 어떤 괴물이 안마당으로 뛰어 들어오기에

몽둥이로 마구 때려 쫓아버리려 하는 데,

온 동네가 놀라 남녀노소 모두 몽둥이 하나씩 가지고

와서 난타하기 시작하였다.

생원이, "나다 ! 나다!" 하였으나 가면을 쓴 생원의 말소리를 누가 알아볼 수 있겠는가?

한결같이 난타 당하다가 겨우 가면을 벗으니 이것은 진짜 생원이라.

집안이 크게 놀라

"이게 무슨 꼴이오?" 하고 곧 방으로 떠메고

들어가니 동네 사람들이 각각 흩어져 갔다.

이후 생원은 감히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또한 빌려준 돈을 달라는 말도 못하였다.

 

제95화 노인이 사리(事理)도 모르면서(老人不可知事理)

어떤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나, 그 아기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울기만 하였다.

이때 며느리가 한 권의 책을 아기 앞에 펴놓자

시어머니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이유를 물으니,

"이 아이 아범은 평소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이 책을 펴들기만 하면 잠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다시 물었다.

"그 아이 아범은 문장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렇지만 아기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런데, 책을 펴놓고 얼마 후에 과연 아기가 잠이 들었다.

그러자 며느리 왈,

"노인이 망녕이 들어 사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 하고 중얼거렸다.

 

제96화 저 이가 바로 그 스님이라오(當日山僧)

윤생(尹生)이라는 사람이 관서지방을 객유(客遊)하다가

어떤 촌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는 데,

비를 만나 계속 묵게 되었다.

안주인은 비록 나이 들었으나 말씨와 모양과 거동이 시골 노파같지 않았는 데,

하루는 그 안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아마도 심심하실 터인데, 내가 옛날 이야기를 해 드리겠으니

한 번 웃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다.

"그것 참 좋소이다." 하고 윤생이 대답하자, 주인 남자가 나서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또 하려고 하오?" 하며 말렸으나, 노파는,

"이제 당신과 저는 다 함께 늙었는 데, 그 말을 해서 해로울 것이 있겠소?"

하고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나는 본시 초산(楚山) 기생으로서 나이 열 여섯에 초산 사또에게 홀려,

그의 총애를 받아 그의 방에서만 함께 지냈는 데, 뜻밖에 사또가 갈려가게 되어

이별에 임하여 쓰고 있던 집물()을 모두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먹을 것을 준 후에 말하기를,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뒤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함께 백년을 지내는 것이 좋으리라."

하기에 나는 울면서 그것을 허락하였지요.

사또가 떠난 후 그 애틋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가 준 것을 패물로 바꾸어 동자 한 놈을 데리고 떠났는 데,

겨우 며칠 길을 가다가 때마침 겨울이라 큰 눈이 내리고

가던 길을 잃게 되어 동자로 하여금 말을 버리고

길을 찾게 하였더니 잘못하여 눈 속에 빠져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지 뭡니까?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다리는 얼어 걸을 수조차 없었는 데,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런데 멀리 숲 사이로 깜박거리는 등불이 보였습니다.

옳거니, 사람이 사는 게로구나. 하고 그리로 기다시피 가서 문을 두드리고 보니

부처님을 모신 암자였습니다.

그러나 방안은 탁자 위에 부처님 한 분이 계실 뿐 아무도 없어

조용하기만 한 데, 아랫목이 따뜻하고 등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누가 있기는 있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인지라, 주인 승낙이고 뭐고 알 바 없이 말안장을 풀고 죽을

쑤어 먹인 후 나도 방 한가운데 퍼져 누웠습니다.

언 몸이 녹으면서 이번에는 열이 나기 시작하는 데,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보는 사람도 없고 해서 치마, 저고리를 다 벗어제치고 속옷 바람으로 누웠더니

좀 열이 가셔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스님 한 분이 내게 달려들어

강간을 하니 도저히 항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산중이라도 누가 와서 도와 줄 리도 없고…….

본래 이 스님은 이미 십 여세 때부터 삭발 출가하여 생식을 하면서

혼자 암자를 지키며 살아왔는 데 그 때 나이 28세로,

바로 탁자 위에 있었던 부처님처럼 보였던 분이었어요.

계행(戒行)이 비록 높았으나 정욕이 움직이게 되니

그것을 어떻게 억제하지 못하였지요.

이튿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이 처마에까지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럭저럭 암자에서

겨울을 나니 두 사람의 정이 함께 흡족하여져

스님이 말하기를,

"나도 당신을 찾지 않았고 당신 또한 나를 찾지 않았건만

길에 쌓인 눈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만나게 하여 준 것이오.

나의 계행은 당신으로 인해서 훼손되고 당신의 절개는

나로 인하여 이지러졌소.

이는 하늘이 당신과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으니 어찌 꼭 옛 낭군을 찾아가서 첩이 되려고 하시오?

나와 함께 해로(偕老)하여 안락을누리는 것이 어떻소?"

하기에 또한 생각 하여보니 이치에 맞는 듯하여 환속(還俗)하는

그 스님을 따라 여기 와서 살았는데,

아들과 딸을 낳아 집안이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소?

저 노인네가 바로 그 날의 환속한 스님이라오."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제97화 나 또 방귀 뀌었는데(吾又放氣)

어느 한 사령(使令)이 전립(戰笠)을 쓰고 활보하면서 걷다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 여인이 과히 밉지 않게 생긴 것을 보고

갑자기 음욕(淫慾)이 생기던 차,

마침 여인이 방귀를 뀌므로,

"어찌 함부로 방귀를 뀌느냐?"

하니 김을 매고 있던 여인이 흘겨보며,

"보리밥을 먹고 종일 김을 매는 사람이 어찌 방귀를 뀌지 않겠소?"

하니 사령이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나무라기를,

"방귀 함부로 뀌는 여인을 관가로부터 잡아들이라는 분부가 있었다."

하고 여인을 끌어 당겼다.

여인은 겁을 먹고 기세가 꺾여 여러 말로 애걸하면서,

"다른 곳에서도 방귀를 뀐 여자가 있을 것이니 나를 버려 두고

다른 사람을 잡아가면 그 은혜가 클 것입니다."

하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러자 사령이,

"내 그대의 청을 들어 줄 것이니 그대도 또한 내 청을 들어 주겠는가?

그렇지 못하면 잡아가겠다."고 하니 여인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령이 그 대답에 여인과 밭가의 후미진 데로 가서

곧 행방(行房)을 마친 다음 여인에게,

"또다시 방귀를 함부로 뀌면 용서 없다." 하였으나

여인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사령이 몸을 일으켜 길가로 올라 서라져가자

여인이 밭 가운데 서서 사령을 보고있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다. 사령이 돌아보며,

"왜 부르는가?" 하고 물으니 여인이,

"내 또 방귀를 뀌었소!" 하였다.

그러자 사령이 팔 소매를 흔들면서,

"네가 방귀를 뀐게 아니라, 바로 똥을 싼 게 아니냐?"

하고는 급히 가 버렸다.

 

제98화 주빈(主賓) 자리에 앉았다가 (獨在主賓席)

()씨 성을 가진 노총각 아전이 있었던 바 그 모습이 훌륭하였다.

성묘(省墓)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어떤 촌가(村家)에 투숙하게 되었는 데,

마침 주인집에 혼례를 지낼 신부가 있었다.

주씨는 혹시 남은 음식이라도 맛볼까 하여

사랑방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려니까

과연 주인집에서 잔치를 벌리며 손님을 부르기에

주씨도 사랑방에 들어가 앉았다.

술을 주고 받다가 여러 손님은 흩어져 가고,

한 방에 있던 새 사위는 술에 만취가 되어

밖에 나가 방뇨(放尿)를 하다가 볏짚단 위에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린 후,

주씨 혼자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집 사람이 주씨를 신랑으로 잘못 알고 나오라 하더니

촛불을 든 자가 신부 방 앞의 휘장을 걷어올리고

()를 맡은 자는 주씨를 인도하니,

주씨는 마침내 방으로 들어가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씨는 화촉(華燭) 아래 신랑이 된 기분이 즐겁기만 하였다.

새벽이 되어 신랑이 취했던 술이 깨어 일어나 신부 방에 들어가려고 하나

문이 굳게 닫힌 채 고요하고 인적이 없는지라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나는 신랑이다 !" 하자 안에서,

"사위는 벌써 가례를 마쳤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런 말을 하느냐?" 하고 대답한다.

신랑이 크게 노하여 수행하여 온 친척들과 함께 한참 떠들고 다툰 끝에

밖에 있는 사람이 진짜 사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 노인은 크게 당황하여 주씨에게,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오?" 하고 물었다.

"엊저녁에 투숙한 나그네입니다." 하고 주씨가 대답하자,

"무엇 때문에 우리 가문을 어지럽혔느냐?" 하고 다시 물었다.

"장례자(掌禮者)가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씨의 이 말에 주인 노인은 어떻게 할 수 없어 주씨를 내치고 새 사위를 들이려 하자,

주씨가 조용히 의관을 갖추고 뜰 아래 나와 절을 하면서,

"바라건대 한 마디 말씀드리고 나가겠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여인의 길은 한 번 허락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다 하며,

한 번 그 절개를 잃으면 아내 됨을 부끄러워한다 하는 데,

부모로서 진실로 딸의 절개가 온전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이지러진 것을 원합니까?

노인장의 따님은 저에게 정절을 바쳤습니다. 재삼 생각하여 주십시오."

하니 주인 노인은 한참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다가,

"이미 도적의 술책에 빠졌으니 이걸 어찌 하겠는가 " 하였다.

그리하여 사위와 장인의 관계가 새로 정하여졌다.

그 후 주씨는 그 문호(門戶)를 크게 세우고 자손들이 번창하였다.

 

제99화 튼튼한 창자(强健大腸)

아주 더운 어느 여름 날 딸아이가 벌거벗고 낮잠을 자고 있는

아버지의 그것을 보고 말았다.

궁금한 딸아이가 어머니에게,

"엄마! 저게 뭐예요?"

라고 묻자 난감한 어머니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으응, 저거…, 저거는 창자다 창자."

10수년이 지난 후 딸은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간 후 반년이 지나 수척한 얼굴로 딸이 친정에 다니러 왔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딸에게 물었다

"시가댁이 가난한 살림이라 여러 가지 어려운 게 많지?"

하며 걱정을 했다.

그러자 딸이 대답하였다.

"집구석은 가난할망정 그이의 창자만은 아주 튼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제100화 손가락이 짧은것을 자책하고,

건망증이 심한것을 책망하다指短自責 忘甚責望)

한 촌녀(村女)가 있었는데 자못 자색(姿色)이 고왔으나 일찍 과부가 되었다.

때때로 남편의 무덤에 가서 통곡을 하곤 했는데

비애(悲哀)의 정을 가누질 못하였다.

과부의 고운 자색에 어울릴만큼 이목구비가 수려한 한 청년이

그 무덤 앞을 지나다가 곡절(曲折)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도 그 앞에 앉아 목놓아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여인이 괴이히 여겨 물으니 청년이 답하기를,

"내 처가 얼마 전에 죽어 항상 비회(悲懷)를 품고 있소.

이제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아주머니의 슬픈 얼굴을 보고,

또한 애통한 곡을 듣고보니 나도 모르게 곡을 하게 된 것이오."

여인은 남편을 잃게된 사연을 말하고는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청년은 더욱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내 아내가 살아 생전에 늘 자신의 손가락이 짧은 것을 자책하고,

나의 건망증이 심한 것을 책망하였으니 아내같은 사람을 어디서 다시 얻을꺼나!"

라고 하며 또 곡을 하였다.

여인이 묻기를, "손가락이 짧은 것은 무얼 말씀하심이요?"

청년이 말하기를, "부끄러워 차마 말 못하겠소."

여인이 힘써 묻자 청년은 대답하였다.

"내 물건이 매우 큰데 아내는 그것을 움켜쥐기를 좋아하였소.

그러나 손가락이 짧아 다 잡히지 않아 늘 그것을 한하였소."

여인이 또 물었다.

"그럼 건망증은 무얼 말함이요?"

청년이 말하기를,

"나는 양기(陽氣)가 너무 강해서 매일 밤 방사(房事)를 벌였는데 하고 또 하였소.

처가 말하기를, '이제 막 하셔놓고, 또 하시는 건 무엇입니까?' 하고

책망하여 물으면 나는, '방금 했다는 것을 깜박했소.'라 답하였지요"

라고 말하고는 또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는 야릇한 정이 문득 발하여

기지개를 하고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피차가 같은 심정으로, 청춘에 짝을 잃어

그대는 처를 통곡하고 나는 남편을 통곡하고 있으나

통곡해 보았자 아득한 황천에 곡소리는 들릴리 없으니

슬피 부르짖어봐야 무익할 뿐이요.

그대와 함께 손잡고 돌아가는 것이 가할 듯 하오."

청년은,이에 말하기를

"심사(心事)가 이미 같으니 여기 있어 봐야 무익하겠구려."

하고는 여인의 집으로 돌아가 짐이 되지 않을 가벼운 보석류를 챙겨 함께 떠나니

그 후로는 두 남녀의 간 바를 모르더라.

청년은 정말로 아내를 통곡한 것이 아니라

자색 고운 과부를 취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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