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유여(遊刃有餘)
칼날을 놀리는데 여유가 있다,
기술이나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놀 유(辶/9) 칼날 인(刀/1) 있을 유(月/2) 남을 여(食/7)]
칼을 가지고 추는 춤 劍舞(검무)는
궁중의 잔치 呈才(정재)에도 시연됐다고 한다.
이것이 ‘망나니 칼춤’이 되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경우다.
옛날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이 망나니인데
언동이 막돼먹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망나니가 칼까지 휘두르니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검술이 아닌 짐승 잡을 때의 칼도 각기 용도가 달라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면 牛刀割鷄(우도할계)라며
어리석다고 욕먹는다.
소를 잡을 때 최고의 명인이라 알려진 사람이
庖丁解牛(포정해우, 庖는 부엌 포)의 성어로 남은 포정이다.
그는 칼날을 놀리는 데(遊刃) 여유가 있다(有餘)는 뜻으로
능수능란한 일솜씨를 가진 대명사이기도 하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梁(양)나라의 庖丁(포정)이라는 사람은
글자대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그 해체하는 기술이 예술이었다.
‘莊子(장자)’의 養生主(양생주)에 포정이
文惠君(문혜군) 앞에서 소 잡는 모습을 묘사한다.
손이 닿는 곳 어깨와 발,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칼질하는 소리가 음률에 맞게 울려 퍼졌다.
넋을 잃고 구경하던 문혜군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포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기술보다 한 단계 앞선
道(도)인데 3년을 닦은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神氣(신기)로 대한다고 하며 쓰는 칼도 19년이 됐지만
숫돌에 금방 간 듯 날카로운 칼날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피절자유간 이도인자무후),
두께가 없는 칼날을 그 틈 안으로 집어넣으니
(以無厚入有間/ 이무후입유간),
넓고 넓어서 칼날을 마음대로 놀려도 항상 여유가 있는것입니다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회회호기어유인필유여지의).’
눈으로 보지 않고 기로 느끼니 칼날도 상하지 않게
소를 해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포정이 처음 소를 잡을 때 소 아닌 것은 보이지 않다가
이제는 소의 전체 모양이 보이지 않게 된 경지가 됐다는
目無全牛(목무전우) 성어도 함께 유래한다.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명검을 썼을 리는 없다.
다년간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정신의 작용대로 따랐으니 19년간 같은 칼을 썼을 것이다.
칼은 잘 벨 수 있는 것이 우선이다.
실력은 닦지 않고 명품만 찾다가는
실제 일을 닥쳤을 때 그르치기 십상이다.
겉만 번드르르하다고 속까지 알차고
결과까지 좋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명분이 그럴싸하다고 다 좋을 수는 없다.
하는 도중에 부작용이 드러나면
처음 명분을 거둬들이더라도 수정할 줄 알아야
나중에 피해가 적다.
칼만 좋다고 함부로 소를 잡다가 망나니 칼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