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실취허(避實就虛)
적의 주력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하다,
실질을 버리고 공론만 일삼다.
[피할 피(辶/13) 열매 실(宀/11) 나아갈 취(尢/9) 빌 허(虍/6)]
경쟁자와 다투거나 적과 싸울 때 양측이 완벽하기는 어렵고
틈이 있기 마련이다. 상대가 강한데 제 실력은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덤비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꼴이 된다.
반면 덩치만 믿고 적을 깔보다간 다윗(David)의 돌팔매에
당한 골리앗(Goliath) 신세를 못 면한다.
중국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의 전략가 孫子(손자)의
병법은 전장을 넘어 인생의 가르침이 되고 국가경영의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이라 평가된다.
여기 나오는 잘 알려진 말이 知彼知己(지피지기)와 함께
虛虛實實(허허실실)이다.
어느 것이나 상대의 실력을 잘 분석하고 대비하면 그르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쌍방의 약점과 장점을 잘 이용하여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은 ‘孫子兵法(손자병법)’의
가장 핵심인 6편 虛實(허실)편에 나온다.
대치한 병력의 상대적 집중과 분산을 잘 파악하여
적군의 충실한 부분을 피하고(避實) 허약한 면을 이용하여
공격하면(就虛) 항상 이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분을 보자.
군대의 형태는 물과 같은 형세를 띠어야 한다면서 이어진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을 향한다
(水之行 避高而趨下/ 수지행 피고이추하),
군대의 형세도 수비가 충실한 곳을 피하고 허술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
(兵之形 避實而擊虛/ 병지형 피실이격허).’
물에 영원한 형태가 없듯이 적의 허실에
따라 대응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漢高祖(한고조)의 손자이기도 한 문학 애호가 劉安(유안)이
淮南王(회남왕)으로 있으면서 많은 문사와 방사를 초빙해
백과사전격의 책을 남긴 것이 ‘淮南子(회남자)’다.
마지막 要略(요략)편에 전투에서 이기는 술수와 변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책략을 밝히면서 이 성어가 등장한다.
적군을 속이기 위하여 ‘실을 피하고 허로 나가도록 한다면,
적군을 격퇴하는 것이 마치 양떼를 뒤쫓는 것과 같다
(避實就虛 若驅群羊/ 피실취허 약구군양)’고 표현했다.
허를 찌르는 擊虛(격허)가 허를 이용하여
취하는 就虛(취허)로 변했다.
싸움터에서의 적이나 경쟁상대의 전력을 잘 살펴 취약한 부분을
집중 공격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글자대로 문제의 실제를 떠나 허망한 것을
좇는다면 다른 문제다.
겉으로 드러나는 근사한 계획을 세운 뒤 명목만 찾다가
실질을 잃고 부작용이 드러나는데도 밀고 나가는 경우가
그렇다.
적을 공격할 때는 탄탄한 곳을 피해야 하지만
이상만 좇는 空理空論(공리공론)은 피해만 가져온다.
개인이 세우는 계획도 물론 그렇고,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들은 더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