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삼촌설격퇴적(三寸舌擊退敵)

우현 띵호와 2021. 7. 20. 23:28

삼촌설격퇴적(三寸舌擊退敵)

- 세 치 혀로 적을 물리치다,

말의 중요성을 이르는 말

[석 삼(一/2) 마디 촌(寸/0) 혀 설(舌/0)

칠 격(扌/13) 물러날 퇴(辶/6) 대적할 적(攵/11)]

입 안의 혀는 맛을 느끼고 소리를 내는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억지로 참으면 혀를 깨물고,

어이가 없으면 혀를 내두른다.

술에 취한 것은 혀가 꼬부라지는 것을 보고 알며,

마음이 언짢으면 혀를 찬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을 조심한다는 역할의 비유이다.

말을 함부로 하다간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하고,

그래서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고 한다.

세 치 혀라 했듯이 1치가 3.03cm라

전체 10cm 정도인데

실제 3분의 2정도를 움직인다고 한다.

혀가 말을 아주 잘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있으니

‘蘇張(소장)의 혀’라 하여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를

좌우한 종횡가 蘇秦(소진)과 張儀(장의)의

말솜씨에 비유했다.

魏(위)나라 장의가 楚(초)나라를 위해 일을 할 때

碧玉(벽옥)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초주검이 되도록

매질을 당했다. 만신창이가 된 그가 깨어나

부인에게 혀가 아직 있는지 물었다.

있다고 하자 장의는 혀만 있으면

나라를 주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안심했다.

吾舌尙在(오설상재) 이야기다.

趙(조)나라 平原君(평원군)의 빈객 毛遂(모수)가

자발적으로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해내지 못한 일을 말로써 해결했다.

모두들 ‘모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 강했다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모선생이삼촌지설 강어백만지사)’고 칭찬했다.

이보다 더 한 말의 위력을 발휘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

高麗(고려)의 초기에 활약한

徐熙(서희, 942~998) 장군이다.

6대 成宗(성종)때인 993년,

거란족의 遼(요)나라가 80만 대군을 앞세우고 침략했다.

적장 蕭遜寧(소손녕)이 밀고 내려오자 두려워한 중신들이

大同江(대동강)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 때 서희가 적진에 가서 담판하겠다고 자원했다.

거란의 옛 영토인 고구려 땅을 내놓으라는

소손녕의 위협에 서희는 조목조목 따졌다.

고려는 옛 高句麗(고구려)의 이름을 딴 나라인데

거란의 동쪽 땅 모두를 도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논리에 굴복한 소손녕은 왕에 보고한 뒤 회군시켰다.

이를 두고 ‘세 치 혀로 적군을 물리쳤다

(三寸舌擊退敵/ 삼촌설격퇴적)’

또는 徐熙談判(서희담판)이라 이르게 됐다.

‘高麗史節要(고려사절요)’등에 전한다.

적의 대군을 물리친 말의 위력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

이치에 닿는 말을 조목조목 들으면 대부분 수긍한다.

하지만 말의 성찬이 벌어지는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나오는 말을 믿는 국민들은 점차 줄어든다.

말을 잘 하더라도 진실이 담겨 있지 않으면

곧 사실이 뒤집히고, 그것이 쌓이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

역시 말은 가려서,

약속은 지킬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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