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갑도적(膝甲盜賊)
방한구를 머리에 쓴 도적,
남의 작품을 훔쳐 자기 것으로 내는 사람
[무릎 슬(肉/11) 갑옷 갑(田/0) 도둑 도(皿/7) 도둑 적(貝/6)]
膝甲(슬갑)은 옛날 상류층이 추위를 막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는 옷이다.
바지 위에 껴입으며 안쪽에 끈을 달아 무릎까지
내려오게 허리띠에 걸쳐 맨다고 한다.
도둑이 부잣집에 몰래 들어가 슬갑을 훔쳐 나오는데
성공했으나 도대체 처음 보는 물건이라 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다녔다.
도둑질한 물건이라는 것을 떠벌린 꼴이라
단번에 들통 났다.
자기가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하고 남의 작품을
몰래 가져와 제 것인 양 발표하는 사람도 나중에
드러나기는 마찬가지다.
산채로 삼키고 껍질을 벗긴다는 살벌한 성어
生呑活剝(생탄활박)과 같이 슬갑을 훔치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洪萬宗(홍만종)의
‘旬五志(순오지)’에 물론 간단한 풀이가 나온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李睟光
(이수광, 1563~1628)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저술로 평가받는 ‘芝峯類說(지봉유설)’을 남겼다.
諧謔(해학)편에
슬갑을 훔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이한다.
내용을 보자.
‘옛날 어떤 사람이 남의 슬갑을 훔쳤으나
그것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昔有偸人膝甲而不知所用/
석유투인슬갑이부지소용),
그래서 이마에 덮어쓰고 거리에 나갔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乃貼額上而出 人笑之/
내첩액상이출 인소지).’
그러면서 남의 글을 훔쳐다가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했다.
적당한 용도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언제 쓰자는 하눌타리냐
(天圓子 將焉用哉/
천원자 장언용재)’라는 속담도 있다.
趙在三(조재삼)이 쓴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실려 있다.
천원자는 약에 쓰는 하눌타리를 말하는데
이것을 얻은 어떤 사람이 어디에 쓸지 몰라
벽에 걸어 두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쌓아두기만 하면
효능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사물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슬쩍 훔쳐 제 것으로 만드는 도둑행위가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글자는 어려운 剽竊(표절,
剽는 겁박할 표, 竊은 훔칠 절)이다.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끼는 것은 따로
文筆盜賊(문필도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을 슬쩍 자기가 창작한 것인 양
세상에 내 놨다가 망신당하는 일이 종종
드러나 소송에 휘말린다.
그 뿐인가. 학문의 결정체인 학술논문을 발표하면서
출처도 밝히지 않고 인용했다가 등통 나기도 한다.
명성을 탐하는 양심불량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