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정궤(明窓淨几)
- 밝은 창과 말끔한 책상, 독서와 명상에 좋은 환경
[밝을 명(日/4) 창 창(穴/6) 깨끗할 정(氵/8) 안석 궤(几/0)]
햇살로 환하게 밝은 창(明窓),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책상(淨几)이라면
글쓰기와 책 읽기가 저절로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예전의 검소를 미덕으로 삼던 선비들은 아담한 文房(문방)에서
사색을 하며 차를 마시고 高談(고담)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종이 붓 먹 벼루를 文房四寶(문방사보)로 아끼며
일필휘지하여 후세에 名文(명문)과 大作(대작)을 남길 수 있었다.
紙筆墨硯(지필묵연)과 함께 밝은 창가의 서궤는
다양한 우리 문화재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이처럼 옛 문사들이 가까이 했던 ‘밝은 창과 정갈한 책상’을
문방이나 서재를 의미하는 일반명사로 사용하는 표현이 됐다.
성어가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곳은 宋(송)나라 정치가이자 문인
歐陽脩(구양수, 脩는 포 수, 1007~1072)의 ‘試筆(시필)’이라고 나온다.
‘밝은 창과 깨끗한 책상. 붓 벼루 종이와 먹 (明窓淨机 筆硯紙墨/
명창정궤 필연지묵)’이 뛰어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 했다.
机는 책상 궤이니 几와 통한다.
明(명)의 許次紓(허차서, 紓는 느슨할 서, 1549~1604)라는 다인은
‘茶疏(다소)’에서 차 마시기 좋은 때로 밝은 창가의 깨끗한 책상을
대할 때(明窓淨几/ 명창정궤)를 24가지 중의 하나로 꼽았다.
이보다 훨씬 다양하게 우리나라 고전에서의 용례를 잘 보인 것은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성어 모음집 ‘惜福(석복)’에서다.
조선 전기의 학자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의 시를 먼저 보자.
‘明窓(명창)’이란 시의 앞 구절이다.
‘밝은 창 정갈한 책상에 앉아 향을 사르니
(明窓淨几坐焚香/ 명창정궤좌분향),
한가한 중 취미가 거나함을 깨닫네
(頗覺閑中趣味長/ 파각한중취미장).’
仁祖(인조) 때의 학자 柳元之(유원지, 1598~1674)는
오랜 병치레 끝에 볕드는 창가에 앉아 독서하는 시를 남겼다.
‘인간 세상 으뜸가는 쾌활한 일이라면
(多少人間快活事/ 다소인간쾌활사),
밝은 창 깨끗한 책상에서 시경을 읽는 걸세
(明䆫靜几讀詩經/ 명창정궤독시경).’
䆫은 창 창, 같은 글자로 窓 외에 窗, 窻 등 많이 있다.
‘우리 한시 삼백수’(정민 평역)의 칠언절구편에 실려 있는
李惟泰(이유태, 1607~1684)의 시도 좋다.
肅宗(숙종) 때의 문신인 그가 집안 조카에게
학문을 권면하며 지었다는 시다. 앞부분은 이렇다.
‘맑은 창가 책상 닦아 먼지 하나 없는데
(明窓淨几絶埃塵/ 명창정궤절애진),
고요히 앉아 마음 맑히니 의미가 참되어라
(默坐澄心意味眞/ 묵좌징심의미진).’
이 모두 고요히 마음을 침잠시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가꾸었던 선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바쁜 시기에 경쟁에 몰리고
생활에 급급한 사람들에겐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