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178

방랑시인 (73)

방랑시인 (73) *고향가는 길...오애청산도수래 (吾愛靑山 倒水來) 신계에서 곡산까지는 높고 가파른 산길로 백여리를 가야 한다. 김삿갓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천동 마을은 곡산 읍내에서도 다시 산속으로 60여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첩첩 산중, 감둔산 (甘屯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곡산으로 가는 길 조차 산이 높고 길이 험해 고개 하나를 넘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길이 천동 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지루한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김삿갓은 눈 앞에 펼쳐지는 산천을 정답게 바라보며 걸어가다가 문득 구양수의 시를 떠 올렸다. 산빛은 멀고 가까움에 다름이 없어 하루 종일 산만 보며 걸어 가노라 보이는 봉우리 모양은 제각기 다르고 그 이름조차 나그네는 알 길 없어라. 고향이 가까워져..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72)

방랑시인 김삿갓 (72)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 "하편" 여인은, "약을 먹지 않고도 뱃속에 애기를 떼어 버릴 방도가 있기는 있사옵니까? " 하고 다시 물어 본다. 그러자 제생당 의원은 자신 만만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약을 쓰지 않고도 애기를 떼어 버릴 비방이 있지! 그런 비방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걸세." "선생님! 그렇다면 저한테만은 그 비방을 꼭 좀 알려주시옵소서." "자네는 약 값을 낼 형편도 못 된다니까, 싫든 좋든 간에 그 방법을 쓸수 밖에 없지 않은가." 김삿갓도 그 비방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만약 제생당 의원이 남이 모르고 있는 그런 비방을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이곳 제생당 의원이야 말로 천하..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01-71)

방랑시인 김삿갓 (71)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 "상편" 다음날 아침, 조반을 얻어 먹은 김삿갓은 곽호산 훈장에게 금천의 산천을 두루 돌아 보겠다고 말을 하고 떠났지만, 마음은 이미,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곡산에 가 있었다. 그의 발길은 곡산을 향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곡산을 가기 위해서는 신계를 거쳐야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산길을 걷던 김삿갓의 눈에, 신계를 앞둔,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에 "臍生堂藥局" 이라고 쓴 커다란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김삿갓은 그 간판을 잘못 보았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다시 보니, 틀림없는 "臍生堂藥局"이었다. 김삿갓은 빙그레 웃음을 웃었다. 간판 글자가 터무니 없는 글자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약국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따..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70) *곽 노인이 말한 "팔도의 특성"

방랑시인 김삿갓 (70) *곽 노인이 말한 "팔도의 특성" 개성을 떠난 김삿갓이 예성강(禮成江) 물줄기를 따라 이틀쯤 거슬러 올라가니, 그때부터는 사람들의 말씨도 다르거니와 얼굴조차 다르게 보였다. (여기가 어딜까 ? ) 사람들의 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다. "여기는 황해도 금천 땅이라오." 김삿갓은 이곳이 황해도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불현듯 복받쳐 오르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가슴이 젖어왔다. 김삿갓은 어린시절, 황해도 곡산(谷山)에서 7년을 살아 온 바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금천에서 2백여리만 더 올라가면 곡산이 아니던가 ? 사투리가 정겹게 들린 이유가 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황해도의 지세는 멸악 산맥이 황해도를 동, 서로 갈라 놓고 있다. 서쪽은 바다가..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69) *선죽교 참배와 앉힘 술집

방랑시인 김삿갓 (69) *선죽교 참배와 앉힘 술집 .. "하편" 망국의 설움이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처량한 시였다. 김삿갓은 저물어 가는 선죽교 위에서 선비가 읊은 시를 듣고, 문득 선비에게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선죽교를 다녀 갔을 터인데, 알려진 시가 고작 한 편밖에 없다니, 안타까운 일 이군요. 그렇다면 제가 즉흥시를 한 수 읊어 보기로 할까요 ? " 선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만약 한 수 읊어 주신다면, 저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아로새겨 두겠습니다." 김삿갓은 잠시 시상에 잠겨 있다가 , 시를 한 수 읊었다. 옛 강산에 말 멈추니 시름이 새로운데 반천 년 왕업이 빈터만 남았구나 연기 어린 담장가에 까마귀 슬피 울고 낙엽지는 폐허에는 기러기만 날아가네. 故國江山立馬愁 ..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68)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

방랑시인 김삿갓 (68)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 (두문 불출..杜門不出..의 어원)과 선죽교 참배.. "상편" 김삿갓은 진봉산으로 철쭉꽃을 찾아 떠났다. 과연, 진봉산 철쭉은 변계량이 읊은 시 처럼 천하에 절경이었다. 제법 험한 산 전체에 철쭉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 있는지,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산 전체가 훨훨 불타 오르는 것 처럼 보였다. 가까이 와 볼수록 더욱 놀라왔다. 철쭉꽃은 진달래꽃과 비슷하면서도 취향은 크게 달랐다. 진달래 꽃의 빛깔은 청초한 연보랏빛이어서 순결 무구한 숫처녀를 연상하게 하지만, 철쭉꽃은 꽃송이 자체도 풍만하려니와 빛깔도 농염하기 짝이 없어, 진달래 꽃과 견주어 보건데, 한창 무르익은 삼십대 여성의 육체가 연상되기에 충분하였다. 진봉산에 피어 있는 꽃은 오직 진달래와 철..

야화 김삿갓 2021.09.28

방랑시인 김삿갓 (67) *개풍군수 강호동의 마부(馬夫) 살리기.

방랑시인 김삿갓 (67) *개풍군수 강호동의 마부(馬夫) 살리기. 장단을 떠나온 김삿갓은 개풍(開豊) 땅으로 들어섰다. 이날 밤 김삿갓은 어느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서당의 훈장의 이름은 이윤성(李允成)이었는데, 인물이 풍채도 좋았지만 선량해 보이는 선비였다. 그런데 훈장은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김삿갓과 마주 앉아서도 연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광경을 보다못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훈장께서는 어떤 걱정꺼리가 있기에 이렇듯 한숨을 쉬고 계시오 ? " 그러자 훈장은 몇 번의 한숨을 더 쉬곤,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십 평생에 남에게 못할 짓은 안하고 살아 왔는데, 오늘은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습니까." 김삿갓은 그..

야화 김삿갓 2021.09.27

방랑시인 김삿갓 (66) *장단에서 황진이(黃眞伊)를 회상하며..

방랑시인 김삿갓 (66) *장단에서 황진이(黃眞伊)를 회상하며..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김삿갓이 임진나루를 건너, 얼마를 더가니 장단(長湍,)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도의 삼절(三絶)로 불려오는 기생 황진이 (黃眞伊)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송도 사람들은 황진이와 함께, 성리학자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송도 삼절로 불렀다. 김삿갓은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망정, 신사임당과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 존재를 길이 역사에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진이는 이처럼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김삿갓은 황진이의 무덤만은 꼭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에 많은 남성들을 희롱해 온 일이 무척 후회가 된 임종 직전의 황진이가, "내가 죽거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백골을 마음대로 밟고 다닐수..

야화 김삿갓 2021.09.27

방랑시인 김삿갓 (65)

방랑시인 김삿갓 (65)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 도인 (仙風道人) 북쪽으로 북쪽으로만 길을 가던 김삿갓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을 가던 초립 동이를 보고 물었다. "날이 저물어 어디선가 자고 가야 하겠는데, 이 부근에 절이나 서당 같은 것이 없느냐 ? " "절이나 서당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벽제관(碧蹄館)에 주막이 있어요." 김삿갓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래 ? 그럼 여기가 바로 벽제관이란 말이냐 ? " 이곳이 벽제관이라는 소리에,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 당시의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질풍 노도와 같이 진격해 오는 왜군을 피해 선조 대왕은 의주(義州) 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눈 앞에 압록강을 건너면 명 나라 땅이고, 다시는 ..

야화 김삿갓 2021.09.27

방랑시인 김삿갓 (64)

방랑시인 김삿갓 (64)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집 주모 "하편" "지금 저 여편네는 술장사를 해먹을망정 사람 하나만은 진국이라오. 인정 많고, 남의 사정 잘 알아주고 ... 계집으로서는 돼 먹은 계집이지요." 김삿갓은 조금전까지 서로 아옹다옹 다투던 모습과는 달리, 백수 건달이 주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노형이 주모를 칭찬하는 것은 너무도 뜻밖이구료. 나는 두 사람이 개와 고양이 사이처럼 보였는데." "주모와 나 사이가 개와 고양이 처럼 보인다구요 ? .. 근데요 사실은 주모가 나를 아껴주고, 내가 주모의 사정을 알아주고 ... 딱히 뭐랄 것은 없지만 그렇게 지내지요." "노형이 주모를 이렇게 좋게 말하고 있지만, 외상술을 안주려는 것을 보면 주모는 노형을 별로 탐..

야화 김삿갓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