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2)<황룡(黃龍)>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2) 첫째·둘째 아들과 달리 늦둥이 셋째는 단번에 알성급제 유 대감은 사흘간 잔치 벌이고 정경부인은 몰래 대성통곡 잔치 끝나자 셋째가 앓아눕는데… 판서로 열두해를 봉직하다가 사직을 하고 낙향한 유 대감은 아들 셋을 뒀다. 첫째와 둘째는 둔재라 번번이 과거에 낙방해 유 대감과 정경부인 이씨의 애간장을 태웠는데, 늦게 본 셋째아들은 열일곱 나이에 단번에 알성급제를 했다. 어사화를 쓴 셋째아들이 백마를 타고 고향집으로 금의환향하자 유 대감은 사흘간 잔치를 벌였다. 소 잡고 돼지 잡고 사물패가 흥에 겨워 뛰고 명창이 지화자를 뽑고, 유 대감은 술잔을 받은 족족 들이켰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정경부인 이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뒤뜰 별당에 문을 잠가놓고 이불을 덮어쓴 채..

사랑방 이야기(141) 노스님의 한숨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1) 양반댁 마님과 통정한 젊은이 산골 암자로 도망오는데… 칠흑 같은 밤, 노스님 혼자 기거하는 첩첩산중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 갑자기 온 산골짝을 뒤엎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노스님의 방문이 홱 열리며 “헥헥, 사람 좀 살려 주십시오.” 노스님이 관솔불을 켜자 웬 젊은이가 바지만 걸치고 맨발로 벌벌 떨고 있는 게 아닌가. 노스님이 암자 마당에서 내려다보니 소나무 사이로 횃불이 어른거리고 킁킁 개가 앞장섰다. 노스님은 젊은이에게 바지를 벗으라 해서 그 바지를 통시(‘뒷간’의 방언) 똥통 속에 던져넣고 젊은이를 법당으로 들여보낸 뒤 자물쇠를 채웠다. 곧 장정 다섯이 삽살개를 앞세우고 암자 마당에 들이닥쳤다. 삽살개가 킁킁거리며 통시로 향했다. 한 녀석이 쇠스랑으로 똥물을 쿡쿡 찔..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0) <석녀(石女)>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0) 시집온 무실댁 애가 들어서지 않자 눈물 흘리며 쫓겨나 어디론가… 어느 날 장에 간 시어머니 인사하는 무실댁을 보고 놀라는데… 무실댁은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고을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갔다. 흰 수염이 한자나 늘어진 의원이 무실댁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더니 냉이 심하다고 한소리를 한 뒤 혀를 찼다. 한참이나 기다려 탕재를 열두첩이나 받아들고 의원을 나온 무실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어머니 뒤를 따라 집으로 왔다. 시어머니가 이를 악물고 “이 탕재값이 얼만 줄 알기나 하는 기여? 이걸 먹고도 소식이 없어 봐라!” 하며 일침을 가한다. 무실댁이 시집온 지 이태가 지났지만 애가 들어서지 않아 애를 태우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별짓을 다했다. 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꼭두새..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9) <삼씨자루>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9) 난봉꾼 허달의 하인 칠석이 주인이 자신의 여자까지 범하자 이를 박박 갈며 집을 떠나는데… 천석꾼 부자 허 참봉이 이승을 하직하자 가장 살판난 사람은 그의 아들 허달이다. 제 아버지 살았을 적, 허달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는 건 유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책하고 씨름해도, 책을 아작아작 씹어 먹어도 제 머리로는 급제할 수 없다는 걸 그 자신이 잘 알았다. 하인 칠석이가 고삐를 잡고 허달이 나귀 등에 타고 꺼덕꺼덕 한양에 올라가면 첫날부터 명월관이다. 허달이 질펀하게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실 동안 칠석이는 처마 밑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과거는 보는 둥 마는 둥 낙방하고 내려와 또 다시 허 참봉 눈치만 보며 공부하는 척하다가 아비가 바깥나들이만 하면 갓 시집온 제 색시를 불..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8)삭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8)삭발 어미 잃은 남아와 버려진 여아 젖동냥으로 키운 허공 스님 십여년 후 둘다 훌쩍자란 어느날… 다리를 건너던 허공 스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세웠다. 냇가 갈대숲에서 “으아~앙” 고고성이 들렸기 때문이다. 달려갔더니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혼절해 누워 있는데 갓난아기가 탯줄을 매단 채 바둥거리고 있었다. “네 놈은 누구냐?” 실성한 산모는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았다. 어미의 하혈에 새빨갛게 물든 아기를 안아 탯줄을 끊고 냇물에 씻기니 고추를 단 놈이 사지를 바둥거렸다. 죽은 산모를 산자락에 묻어주고 바랑망태에 애기를 넣고 동네로 가 젖 나오는 산모를 찾았다. 이튿날부터 이마을 저마을 다니며 젖동냥을 하는게 허공 스님의 일이 되었다. 3년이 흐른 어느 날 새벽, 아이..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7)<육갑>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7) 열아홉 하녀와 정분난 조 대인 안방마님은 애간장을 태우고 모처럼 안채를 찾은 조 대인은 목석같은 부인 반응에 놀라는데… 천석꾼 부자 조 대인은 승지 벼슬을 팽개치고 낙향해 향리 선비들과 어울리는 게 낙이다. 누구나 조 대인을 하늘처럼 우러러보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대궐 같은 스물네칸 기와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나눠져 그 사이에 있는 중문을 잠그면 다른 집이 된다. 사랑채에서 조 대인 수발을 드는 춘분이는 열아홉살 꽃다운 하녀다. 안채에 그녀의 방이 있지만 밤이 깊어지면 으레 소반에 술상을 차려 살짝 중문을 열고 사랑채로 가 조 대인 앞에서 술을 따른다. 모두 잠든 밤, 멀리 소쩍새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데 술 한잔 마신 남자가 술잔을 따르..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6)<돈자랑, 산랑자랑>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6) 동갑내기 둘도 없는 친구 미화는 돈많은 홀아비에게 순덕은 성실한 농사꾼에게 각자 시집갔는데… 앞집 미화와 뒷집 순덕이는 동갑내기로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다. 그러나 둘은 커가면서 모습도 행동거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화는 잽쌌고, 순덕이는 굼떴다. 미화는 말도 잘하고 생글생글 웃는 상이지만, 순덕이는 입이 무거운데다 표정도 무덤덤했다. 미화는 잘 토라졌지만, 순덕이는 화내는 법이 없었다. 열서너살이 되자 미화는 키도 훌쩍 자라 제 고모 박가분도 훔쳐 바르고 치마끈도 바짝 조여 허리는 잘룩하고 엉덩이는 골짜기를 드러내 걸음걸이도 살랑살랑거렸다. 반면에 순덕이는 펑퍼짐한 몸매에 모양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집안은 하나같이 빈농이다. 순덕이는 집안일에 팔을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5)<장맛비>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5) 금실 좋은 이 진사와 유씨 부인 갑자기 안방 발길 끊은 남편 부인은 사랑채 소리를 엿듣는데… 이 진사는 양반 집안의 가장이다. 사랑방에서 선비들을 만나 고담준론을 펼치고, 술을 마셔도 남에게 취기를 보인 적이 없다. 부인 유씨도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안방에서 사군자 수묵을 치는 게 일과다. 조용한 성품에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아 집안 하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불심도 깊어 동이 트기도 전에 반야심경 읽는 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이 진사와 유씨 부인은 허구한 날 양반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만 사는가? 아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 밤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진사는 읽던 책을 접고 사랑방을 살며시 나온다. 처마 밑을 타고..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4)<황구(黃狗)>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4) 가마솥에 들어갈뻔한 황구 지나가던 배 진사가 구해줘 함께 나루터 주막에 묵게되는데… 옥색 한산 세모시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허우대 멀쑥한 젊은이가 강둑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름드리 버드나무 그늘에 남정네들 여러 명이 모여 가마솥을 걸었다. 한 무리가 땔나무를 모아 오고, 나머지는 밧줄을 버드나무 가지에 매어 달고 줄을 잡아당기는데 밧줄 끝이 황구(黃狗) 목에 걸렸다. 황구는 마지막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가지에 걸린 밧줄을 두 남정네가 힘껏 잡아당기자 황구는 낑낑 캑캑 질질 끌려가다가 마침내 죽음이 코앞에 닥쳤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저항도 포기한 채 슬픈 눈으로 강둑 위의 선비를 쳐다보는 것이다. “여보시오~” 선비가 소리치며 버드나무 밑으로 내려갔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3) <보은>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3) 물에 빠진 노인 살려준 필동 지관인 노인의 말 듣고 선친 묘를 명당으로 옮기는데… 장마가 시작되려나, 지난밤에 큰비가 왔다. 두달 전 장례를 치르고 주인집 오 진사네 산자락 끝머리에 땅 한평 얻어서 아버지를 묻고 올려놓은 봉분이 걱정돼 필동이는 먼동이 트자마자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발밑의 개울은 으르렁 거리고 흙탕물이 휘돌아 묘터를 갉아먹어 관이 삐죽이 드러났다. 정신없이 삽질을 하는데 “어푸 사사사람 어푸 사사살려~” 필동이 돌아보니 황톳물 급류에 노인 하나가 떠내려가는 게 아닌가. 필동이는 물에 풍덩 뛰어들어 주먹으로 노인의 얼굴을 쳐서 기절시킨 후 그의 멱살을 잡고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둘은 급류 속으로 사라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다가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