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2)<짝은 따로 있었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2) 노 첨지 재취로 팔려간 열일곱 막실이 남편이 이승 하직할 날만 기다리는데… 막실어미가 폐병에 걸려 노 첨지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다가 병을 고쳤지만 온 식구들 목줄이 걸려 있는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는 노 첨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늙은 노 첨지가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를 돌려주고 꽃다운 열일곱 막실이를 사와서 재취로 들여놓았다. 흑단 머리에 백옥 같은 살결, 또렷한 이목구비에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꿈 많은 이팔청춘 막실이. 줄줄이 어린 동생들 배 굶기지 않겠다고 제 어미 눈물을 닦아주고 제 발로 노 첨지에게 간 것이다. 노 첨지네 식구들은 단출하다. 막실이와 동갑내기인 노 첨지의 무남독녀와 우람한 덩치의 총각 머슴이 가족의 전부다. 낯선 집에 안주인으로 들어온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1) <파락호 허진사>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1) 처자식도 내빼게 만든 난봉꾼 허 진사 동네 훈장 세상뜨자 그 부인을 탐하는데… 허 진사는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다 팔아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색주(色酒) 집으로 노름판으로 떠돌아다니는 한심한 파락호다. 부인은 진작에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려 허 진사 혼자 사니, 끼니 건너뛰기를 밥먹듯이 해 비쩍 마른 손가락이 더 길어졌다. 그런 허 진사가 요 며칠 사이 바빠졌다. 동네 서당 훈장님이 이승을 하직해 상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죽고 나자 빈소를 차리기도 전에 달려와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아이고 형님, 이게 어인 일이오~ 아이고 아이고~.” 일가친척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훈장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0)복권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0)복권 물살 급한 장자강에 돌다리 놓으려는데… 교각도 못 세우고 공사자금 바닥 꾀많은 이방 “복권을 발행하시지요” 나락 오십석, 황소 한마리, 돈 천냥… 여기저기 일등 상금놓고 복권 판매 어느날 나타난 천하일색 여인…‘ 절대 실망하지 않을 상품’ 내걸었는데… 강계를 가로지르는 장자강은 물살이 급해 장마철만 되면 다리가 떠내려가버린다. 가을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나면 원님의 진두지휘 아래 강계 백성 남정네를 모두 동원하여 아름드리 낙락장송을 베어와 널찍하게 교각을 세우고 통나무 상판을 얹어 꺾쇠를 박아 우마차가 지나가도 끄떡없도록 다리를 세워놓지만 이듬해 장마철이면 또 속절없이 무너진다. 원님이 궁리 끝에 평양감사의 승인을 받아 돌다리를 놓기로 했다. 조정의 지원을 받고 강계 백..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9) <때늦은 회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9) 홀시어머니 호된 시집살이도 눈물 한바가지로 견딘 효실 남편 시앗소식에는 잠 못 이루는데… 가난한 선비의 딸, 효실이 부잣집 노 대감의 외아들에게 시집갔다. 인물 좋고 착하고 예절 바른 효실이 시집을 잘 갔다고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효실은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친정 신행길을 다녀오고 바로 알아차렸다. 시집식구라고는 시어머니 하나뿐이어서 극진히 모시겠다고 다짐했지만, 새침한 시어머니는 작정하고 효실의 오장육부를 뒤집기 일쑤였다. “한번 풀어보고 하도 기가 막혀 그대로 처박아 놓았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것도 혼수라고…. 끌끌끌.” 효실은 우물가에서 실컷 울고 난 뒤 세수하고 들어오는 게 일상사가 되었다. 두살 위의 신랑, 용무도 제 어미한테 시달리기는 마..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8) <씨받이>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8) 강 진사댁 씨받이가 된 찬모 꽃님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는데… 강 진사는 젊지만 점잖은 선비다.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고 매관매직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뜻 맞는 선비들과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월을 낚는다. 풍채 좋고, 입이 무겁고, 온후한 인품으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수많은 소작인들도 강 진사를 하늘처럼 우러러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소작인들이 갖고 오는 나락가마를 적다고 호통쳤던 집사가 강 진사에게 불려가 주는 대로 받으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한번은 찬모 꽃님이 숭늉을 들고 사랑방으로 갔을 때 식사를 하던 강 진사가 ‘딱’ 돌을 씹고 두손으로 입을 감쌌다. 너무 놀란 꽃님이 뜨거운 숭늉 그릇을 떨어뜨렸다. 입에서는 깨진 어금니가 나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7)<권세마을>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7) 천하명당 양반마을에 주막이 들어서고 동네 남정네들 몹쓸병 걸리는데… 뒤로는 산이 병풍을 두르고 남향으로 문전옥답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너머 마르지 않는 강이 승천하는 용처럼 휘돌아 흐르니 이 마을이야 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 천하명당이다. 100여호가 사는 이 마을을 사람들은 권세(權勢)마을이라 부른다. 초가 한채 없이 날아갈듯 처마끝이 용트림하는 기와집들이 즐비하니 왕궁처럼 웅장한 이 마을, 아무개씨네 집성촌(集姓村)이 배출한 인걸은 두 손으로도 다 꼽을 수가 없다. 좌의정이 나고, 도승지와 판서가 수두룩하니 참판은 명함도 못 내밀 처지다. 지금도 왕궁엔 이 권세마을 출신들이 서로 이끌고 밀며 권력의 한축을 이룬다. 고을 사또가 부임하면 맨 먼저 이 권세마을로 달..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6)<명월결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6) 피를 나눠 마시고 의형제가 된 한량 셋 그중 둘째는 부인을 두고 기생에 빠져살다 폐렴에 걸려 이승을 하직하는데… 한량(閑良) 셋이서 매사냥을 다녀왔다. 장끼 네마리를 허리춤에 꿰차고 눈가리개를 채운 날렵한 매를 어깨 위에 얹고, 흑마·백마 각자 제 말을 탄 한량 셋이 종로통을 지나자 어가 행렬만큼이나 구경꾼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들이 명월관 앞에 다다르자 말발굽 소리에 벌써 기생들이 우르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술상을 가운데 두고 세사람이 기생을 둘씩 끼고 앉으니 큰방이 꽉 찼다. “형님, 피를 본 김에 도원결의, 아니 명월결의를 합시다.” 넘어져 코피가 난 큰형은 코마개를 빼고 새끼손가락을 콧구멍에 넣었다가 피 묻은 손가락을 술대접에 씻었다. 둘째는 갈아 붙인 무릎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4) <계모의 코를 꿰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4) 계모로 들어온 기생, 본처의 딸을 하녀 부리듯 어느날 밤 아버지없는 안방에서… 천석꾼 부잣집 외아들, 강 초시는 제 아버지 강 진사 빈소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통곡을 했다. 아버지 강 진사가 외아들에게 평생을 두고 걸었던 급제의 기대를 끝내 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 강 초시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이다. 구일장을 치르고 강 초시는 이 방 저 방 쌓여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마당에 꺼내놓고 불태워버린 후 주막으로 가 술만 퍼마셨다. 사람이 변해버렸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면 조신한 부인을 두들겨 패기 일쑤고 그토록 귀여워하던 일곱살 딸도 곁에 오지 못하게 했다. 노름판에서 문전옥답 대여섯 마지기 논문서가 하룻밤에 날아갔다. 기생집 대문을 걸어잠그고 기생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3)매독(梅毒)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3)매독(梅毒) 벼슬장사치 이 참판 어린기생도 천하일색도 싫다하고 오직 남의 여자만 탐하는데… 동창이 겨우 밝아오는 새벽녘에 옥 참봉이 이부자리 속에서 마누라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집사가 처마 밑에서 아뢰었다. “나으리, 젊은 선비가 사랑방에 들었습니다.” 옥 참봉이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려 하는데, 마누라가 눈을 흘기며 사족(四足)으로 옥 참봉을 옭았다. “부엌의 삼월이 더러 차 한잔 끓여주라 하게.” 마누라가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밴 후에야 옥 참봉을 풀어주었다. 그제야 허리춤을 올리고 탕건을 쓴 옥 참봉이 안마당을 건너 사랑방 문을 열어보니 벌써 젊은 선비 세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따리를 두루마기 자락 밑에 숨기고 있었다. 피땀 흘려 공부해 과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2) <삼강주막>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2) 이초시가 술상 앞에 고꾸라지자 노대인은 이초시 부인이 자는 방의 문고리를 당기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난 주막집은 술판으로 이어진다. 토담 옆의 홍매화가 암향을 뿜으며 초롱 불빛을 역광으로 받아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임자는 다리도 아플 터인데 먼저 들어가 주무시오. 나는 술 한잔 하고 들어갈 터.” 점잖은 선비가 부인과 겸상으로 저녁을 마치고 주모에게 매실주 한 호리병을 시킨 뒤 부인의 등을 떠밀었다. 홍매화를 쳐다보다 눈을 감고 암향을 깊이 마신 부인은 눈꼬리를 올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도 매실주 한잔 마시고 갈래요.” 선비는 점잖은데 그의 부인은 홍매화처럼 색기(色氣)를 풍긴다. 왼손 소맷자락으로 술잔을 가리며 한잔 마신 선비의 부인은 미끄러지듯이 평상에서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