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7) 나룻배 전복사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7) - 나룻배 전복사건 온가족과 나룻배 타고가던 ‘강탁’ 강 복판서 배가 뒤집혀 가족 잃어 사흘 후 고을 이방 칼에 찔려 죽고 두달 후 이백오십리 밖 마을 색줏집에 있던 졸부 뱃사공에 칼 들이대는 자객 나타났는데 장인어른 회갑잔치에 가는 강탁은 네살배기 아들 손을 잡고 장옷을 덮어써 불러오는 배를 감춘 채 두 눈만 빠끔히 내놓고 뒤따르는 아내, 그리고 고리짝을 지고 마지막에 따라오는 행랑아범과 골포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황포돛대를 단 긴 나룻배는 닻줄을 풀고 조금 뒤에 다가올 참상도 모른 채 조용히 강물 위로 미끄러졌다. 강 복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나룻배 바닥에서 물이 용솟음쳐 오르고 황포돛대가 기울기 시작했다. 강탁은 뱃전을 잡고 말미 쪽으로 가며 아들과 아내를 불렀다. 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5)비매, 그리고 두남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5)비매, 그리고 두남자 기품있는 기생 ‘비매’ 윤대감의 정성끝에 첩실로 들어가 딸 낳고 살던 중 윤대감 귀양 떠나 윤대감이 사약 받았단 소문 들리고 집담보 고리채 쓰다 궁핍에 몰리자 상처한 권판서 집으로 들어가는데… 비매는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실부모하고 집안이 기울어져 어린 나이에 기생학교인 권번에 들어갔다. 흑단 같은 머리에 백옥 같은 살결, 반달 눈썹에 사슴 같은 큰 눈…. 미모도 빼어났지만 얼굴엔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기품이 서려 있었다. 시조를 짓고 사군자를 쳐 팔폭 병풍을 만들기도 했다. 열여섯에 비매는 명월관으로 들어갔다. 비매의 명성은 삽시간에 퍼져 장안의 한량들이 몸살을 앓기에 이르렀다. 누가 비매의 머리를 얹을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지만 비매의..

황견유부(黃絹幼婦)

황견유부(黃絹幼婦) 절묘하다란 뜻의 은어 [누를 황(黃/0) 비단 견(糸/7) 어릴 유(幺/2) 며느리 부(女/8)] 破字(파자)를 말할 때 丁口竹天(정구죽천)이 풀어 쓴 可笑(가소)를 뜻한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 웃을 笑(소)자를 나누면 竹夭(죽요)가 되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된다. 이런 간단한 문제가 아닌 정말 어려운 파자가 있다. 누런 비단(黃絹)과 어린 며느리(幼婦)라 도무지 알쏭달쏭한 이 성어가 아마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뜻을 풀어서 그것을 다시 조합하여 글자를 맞추는 파자의 고차방정식이라 할 만하다. ‘世說新語(세설신어)’란 일화집이 있다.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책인데 깨달음이 빠르다는 뜻의 捷悟(첩오)편에 전한다. 後漢(후한) 때에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9)도로아미타불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9)도로아미타불 훤칠한 선비, 주막에 들어가 비싼 고려청자 맡기고 보관증 받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던 주모 꽃단장 하고는 선비방으로… 석양이 새빨갛게 물든 합강 나루터에 막배가 닿자 대여섯 사람이 배에서 내려 뿔뿔이 흩어지는데, 갓을 눌러쓴 훤칠한 선비 한사람은 사방을 훑어 보더니 성큼성큼 주막으로 들어갔다. 치마끈을 바짝 올려 매, 엉덩짝 선이 그대로 드러난 젊은 주모가 은근슬쩍 눈웃음을 치며 선비를 맞았다. 객채 끝, 독방을 잡은 선비는 국밥에 막걸리 한 호리병을 마시고 주모를 부르더니 단봇짐을 풀어 비단보자기에 싼 상자를 꺼냈다. “나는 닷새나 엿새쯤 여기 묵을 참인데 이것은 참으로 귀한 물건이니 잘 보관해 주시고 보관증을 써 주시오.” 주모가 부르자 안방에서 주모의 기둥서방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7)누렁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7)누렁이 민 진사가 산돼지에게 공격 받자 누렁이 모자가 달려들어 목숨 구해 애꾸된 어미와 꼬리잘린 새끼를 민 진사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다 몇해 후 겨울에 세상 떠나고… 뿌려 놓은 산삼씨를 보러 오늘도 민 진사가 뒷산으로 오르자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고 새끼도 어미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이 났다. 마을 뒷산이지만 산세가 꽤나 험해 민 진사는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누렁이 모자는 펄쩍펄쩍 잘도 오른다. 민 진사가 한숨 돌릴 겸 다래나무 넝쿨 앞 바위에 앉아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넝쿨 속에서 뭔가 자꾸 부시럭거려 손에 잡히는 돌을 던졌다. 그러자 콰르르 산돼지 새끼들이 넝쿨 속에서 빠져나오더니 눈을 부릅뜬 어미 돼지가 민 진사에게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민 진사가..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6)선친의 일기장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6)선친의 일기장 인정 많고 점잖아 존경 받던 김 진사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노망 들어 겨울밤 부인의 묘 찾아가다 죽는데… 아들 김 초시, 아버지 장례 치르고 유품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하곤 김 진사네 집안은 웃음꽃이 떠날 날이 없었다. 천석꾼 부자는 아니지만 머슴 셋을 두고 문전옥답 백여 마지기 농사를 지으면 곳간이 그득해 보릿고개엔 양식 떨어진 가난한 이웃에 적선도 베풀었다. 동네에 서당이 없어 손자 셋과 동네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이면 김 진사는 훈장 노릇도 했다. 인정 많고 점잖아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김 진사의 서른두 살 아들 김 초시는 제 아비를 빼쏘아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매사에 사려 깊고 성품이 착했다.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5)점괘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4)점괘 과거시험 세번이나 떨어진 ‘권오걸’ 한양 가는길에 미친 점쟁이 만나… 외수염 잉어 살려주면 합격한다며 “자네 색시는 저 아이야”하고 주모 등에 업힌 아이를 가리키는데 예천 땅 용궁에서 거지꼴을 한 미친 점쟁이가 오늘도 킬킬거리며 저잣거리를 돌다가 허름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미친 점쟁이는 혼자 국밥을 먹던 말끔한 젊은이 앞에 서더니 “세번이나 떨어지고 또 끌끌” 하고 중얼거렸다. 얼굴이 박박 얽은 주모가 아기를 업은 채 “나가! 재수 없게” 하며 부지깽이로 내쫓으려는 걸 젊은이가 막아섰다. “이분 밥값은 내가 내리다.” 젊은이는 점쟁이에게 술 한잔을 따르며 물었다. “내가 과거에서 세번이나 떨어진 걸 어찌 알았수?” 점쟁이가 킬킬거리며 말을 받았다. “이마에 쓰여 있어.”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4) - 빨간 모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4) - 빨간 모과 열네살 맏딸 맹참봉에게 보내고 몸값으로 논 다섯마지기 받은 신서방 어느날 느닷없이 끌려가 사또 앞에 섰는데 “금붙이 훔쳐 달아난 딸의 행방을 이실직고하라” 동지섣달 짧은 해가 오늘따라 왜 이리 긴가. 어둠살이 사방 천지를 시커멓게 내리덮자 마침내 신 서방이 열네 살 맏딸을 데리고 맹 참봉 사랑방을 찾았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신 서방은 말없이 한숨만 쉬고, 맹 참봉은 뻐끔뻐끔 연초만 태우고, 신 서방 딸 분이는 방구석에 돌아앉아 눈물만 쏟는다. “참봉 어른,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것이 아직 철이 없어서….” 맹 참봉 사랑방을 나온 신 서방은 주막집에 가서 정신을 잃도록 술을 퍼마셨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신 서방은 술이 덜 깬 걸음으로 맹 참봉을..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2)형님 소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2)형님 소 우 서방 장가들 때 받은 수송아지 일소로 부리려면 길들이기 급선무 형님이 앞에서 코뚜레를 잡고 우 서방이 뒤에서 쟁기를 잡았는데… 우가네 막내인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라 세간이라고 받은 건 솥 하나, 장독 하나, 돌투성이 밭뙈기 그리고 철도 안 든 수송아지 한마리뿐이다. 먹고살 길은 산비탈을 개간해 밭뙈기를 늘려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소가 쟁기질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툭하면 큰집 어미 소에게 달려가는 수송아지를 키워 길들이는 일이 급선무다. 우 서방은 송아지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추수하고 난 남의 콩밭에 가서 낟알을 줍고 산에 가서 칡뿌리· 마뿌리를 캐다 쇠죽솥에 넣었다. 그랬더니 송아지는 금세 엉덩짝이 떡 벌어지고 머리 꼭대기엔..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0)출가외인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0)출가외인 고 진사 시집간 맏딸 집에 가 섭섭한 대접 받고는 화를 꾹 참으며 나오는데… 맏딸 부친 부고 소식 듣고 대성통곡 하더니 친정집으로 점잖은 고 진사는 평생 화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겨울이 되자 해소천식이 심해진 고 진사는 사십리 밖 황 의원을 찾아가 약 한첩 지어 집으로 가다가 문득 딸 생각이 나서 발길을 돌렸다. 십리만 더 가면 재작년에 시집간 맏딸 집이다. 오랜만에 딸도 보고 사돈댁 살아가는 모습도 볼 겸 고개 넘고 물 건너 막실 맏딸 집으로 한걸음에 내달았다. 절구를 찧던 딸이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아버지, 어인 일로…” 하고 달려나온다. 바깥사돈도 사랑방에서 나와 고 진사의 두손을 잡는다. “이렇게 불쑥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