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9)허 생원의 유산 상속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9)허 생원의 유산 상속 세상 부러울것 없던 허생원… 포목점에 불이나 전재산 잃고 부인까지 저세상으로… 주위 도움으로 다시 가게 열고 자식 열다섯만 되면 시집장가 보내 세월 흘러 백발된 허생원… 칠남매 불러모아 돈 달라 하는데… 허 생원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포목점은 손님이 끊이질 않고, 아들 다섯 딸 둘 칠남매는 쑥쑥 자라고, 마누라는 아직까지 미색을 잃지 않아 허 생원은 첩살림 한번 차린 적이 없다. 호사다마, 포목점에 불이 나 비단이고 안동포고 싹 다 잿더미가 된 것은 고사하고 옆집 지물포 뒷집 건어물전까지 태웠다. 설상가상, 발 달린 아이들은 가게에 딸린 살림집에서 뛰쳐나왔지만 두살배기 막내를 구하러 뛰어들어간 부인은 물에 적신 치마로 막내를 싸서 밖으로 던지고 자신..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8) 동짓달 열이틀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8) 동짓달 열이틀 애 못낳아 시댁서 쫓겨나 국밥집 차린 막실댁 아이들 지켜보는 게 유일한 재미 세월 흘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막실댁은 시집간 지 삼년 만에 애도 못 낳는 석녀라고 소박맞고 쫓겨나와 친정에서 잠깐 눈칫밥을 먹다가 저잣거리 뒷골목에 국밥집을 차렸다. 새벽녘에 도살장에 가서 양지·사골·대창·머릿고기를 함지박에 담아와 무·대파 썰어 넣고 설설 끓여 뚝배기에 담아내면 장꾼들·노름꾼들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퍼먹고 갔다. 혼자서 장 봐오고 국 끓이고 상 차리느라 술은 아예 팔지를 않았다. 바쁘기도 하려니와 술손들 주정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늦은 밤, 설거지를 끝내고 방바닥에 돈주머니를 쏟아보면 별로 남는 게 없다. 그러나 밖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온종일 국 끓인 덕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7) - 앉은뱅이 노 참봉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7) - 앉은뱅이 노 참봉 물불 안 가리고 돈 모은 노 참봉… 마흔이 되자 천석꾼 부자 되는데 어느날 이유없이 두다리 마비 용하다는 의원 찾아 갔더니… 천석꾼 부자 노 참봉이 탄 가마가 억새밭이 파도처럼 흔들리는 오솔길을 까딱까딱 가고 있었다. 가마 속 노 참봉은 한평생 살아온 게 꿈만 같다. 어린 시절, 하늘은 높고 나뭇잎은 노랗고 빨갛게 물들고 억새는 꽃처럼 하얗게 하늘거리면, 다른 아이들은 고추잠자리를 잡고 홍시를 따 먹으며 풍성한 가을을 만끽했지만 어린 노 참봉은 덜덜 떨었다. ‘다가오는 겨울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 참봉 어릴 때 이름은 풀소매였다. 눈물 콧물을 훔치느라 소매가 항상 풀을 발라놓은 듯 번들거렸기 때문이다. 조실부모하고 큰댁에 들어간 풀소매는 새경도..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66 명필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66명필 퇴락한 양반가문 휘좌 훈장님도 감탄할만큼 서예 뛰어나 입춘방 받으려는 사람들 줄서 ​ 아버지 죽은후 붓 놓고 농사일 마당서 콩 터는데 웬 노인 찾아와… ​경상도 문경 땅에 살고 있는 휘좌와 운봉이는 둘도 없는 서당 친구다. 집안은 딴판이다. 퇴락한 양반 가문인 휘좌네는 궁핍이 달라붙었지만 저잣거리에서 놋점을 하는 운봉이네는 살림살이가 풍성하다. ​서당에서 글재주는 말할 것도 없이 휘좌가 출출문장(出出文章)인 반면 운봉이는 허구한 날 훈장님 매타작만 덮어썼다. 서당에서 까다로운 숙제라도 받은 날이면 운봉이는 휘좌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휘좌는 쌀밥에 고깃국 저녁을 얻어먹으며 운봉이 숙제를 도와주고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곤 했다. ​어느 날, 숙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5) 속터진 만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5) 속터진 만두 찜솥뚜껑에 손을 녹이던 어린 남매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고 가게주인 순덕, 뒤쫓아 가는데… 성 밖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 이 빈촌 어귀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없고, 얼핏 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4)눈에는 눈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4)눈에는 눈 외삼촌 부고 받고 삼십리길 나섰다가 나루터에서 발 묶인 박서방 발길 돌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안방에서 마누라와 이진사가… 박 서방은 외삼촌 부고를 받고 헐레벌떡 삼십리 길을 나섰다가 나루터에서 발이 묶였다. 도선이 끊긴 것이다. 나루터 주막에서 대포 한잔 마시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마누라가 깰세라 살며시 삽짝을 열고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천둥소리보다 더 놀라운 소리! 마누라의 자지러지는 교성 사이사이 철퍼덕철퍼덕 진흙탕 바닥 지나가는 황소 발자국 소리! 박 서방은 낫을 찾아 들고 콰당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연놈이 혼비백산 이불을 뒤집어썼다. 박 서방은 호롱불을 켜고 이불을 낚아챘다. “이 진사, 네놈이구나! 야밤에 남의 여편네와 분탕질을 하는게..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3)운명은 하늘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3)운명은 하늘에 재물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곽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고자되자… 내시로 궁중에 들여보내는데… 곽가는 재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노름판에서 사기도박을 하고, 창기를 두고 포주 노릇도 했고, 부잣집 영감에게 색녀를 붙여놓고 협박해 돈을 뜯고, 타고난 완력에 두둑한 담력으로 해결 안 될 일을 해결해주고 전대를 채웠다. 돈이 좀 모이자 고리대며 장리쌀을 놓아 섣달이면 곽가에게 논밭을 뺏겨 거지가 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마침내 고을에서 몇째 가는 부자가 된 곽가는 진사 벼슬까지 샀다. 커다란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기침소리도 커졌다. 재물에 벼슬까지 잡았으되 하나 부족한 것은 자식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첩을 얻어 씨를 뿌리던 중 머리 얹어준 기생 도화가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2) 그 서방에 그 계집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2) 그 서방에 그 계집 계집아이처럼 예쁘장해 동네에서 인기 많던 매방이 장가가서 각시와 알콩달콩 지내다 어느날 방물장사를 시작하는데… 어느 계집애가 고추 달린 매방이보다 예쁘랴. 어릴 때부터 매방이는 보는 사람마다 계집아이라 했지 사내아이라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커서도 매방이는 인물값을 했다. 기골이 아담한 데다 얼굴은 백옥처럼 희고 눈은 사슴눈처럼 크고 콧날은 오똑하고 입술은 도톰해 치마만 두르면 열여덟 색싯감이었다. 싱거운 아낙들은 매방이를 보면 한마디씩 했다. “아이고 조 녀석, 이불 속에서 깨물어 먹었으면 한이 없겠네.” “두고 보게. 인물값 한번 단단히 할 게야.” 아니나 다를까. 장가도 가기 전에 매방이를 둘러싼 도색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강 건너 이 초시 딸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1)절름발이 만들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1)절름발이 만들기 배운것도 없고 집안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만은 빠지지 않는 덕배 임참봉 열여덟살 무남독녀 도화와 남몰래 가끔 만나는데… 두사람 소문 들은 임참봉…둘이 만나는 물레방앗간 들이닥쳐… 덕배는 배운 것도 없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는 조선 천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열여섯이 되자 제법 남정네 티가 나 키는 훤칠하고 어깨는 떡 벌어지고 목은 울대가 불쑥 솟았다. 나무하고 지게 지는 처지지만 얼굴 허옇고 콧날 오뚝하고 눈썹은 시커먼 미남이다. 휘파람을 불며 냇가를 지날 때면 빨래하던 아낙네들의 자발없는 입놀림이 이어진다. “덕배가 멱 감는 걸 먼발치에서 봤는데 물건이 보통 실한 게 아니여.” “어느 년이 저놈 아래 깔릴지 생각만 해도 사지가 녹아드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0) 할매 국숫집, 아지매 국숫집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0) 할매 국숫집, 아지매 국숫집 최고 갑부인 윤 첨지 장사 잘되는 할매 국숫집 앞에 국수가게 열고 싼값에 파는데… 윤 첨지는 뿔이 났다. 추수가 끝나고 동짓달이 되면 재산이 쑥쑥 불어나야 하는데 근년에는 그 망할 할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보릿고개에 놓았던 장리쌀을 거두러 다니면 열에 아홉은 갚을 길이 없어 전답을 헐값에 넘기기 마련인데, 요새는 할매가 대신 갚아줘 전답 문서가 넘어오는 일이 없다. 아예 보릿고개 때부터 할매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윤 첨지의 축재에 걸림돌이 되는 할매는 도대체 누구인가? 열두살 먹은 손자 하나 빼면 핏줄이라고는 다 끊어졌지만 합강 포구에서 국숫집을 키워 부자가 된 여장부다. 합강은 두 강이 만나는 곳이다. 동북강에서 내려온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