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9) 천석꾼 천가지 걱정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9) 천석꾼 천가지 걱정 민진사와 곡차 친구인 석근스님 천석꾼 부자에 경국지색 부인을 둔 그를 부러워하는데… 석근 스님과 민 진사는 곡차 친구다. 암자에서 나올 때 암자로 들어갈 때 석근 스님은 어김없이 민 진사 집에 들러 술잔을 따르며 고담준론을 나누고 시를 짓고 사군자를 쳤다. 허우대가 훤칠한 민 진사는 천석꾼 부자에 경국지색 부인을 둬 세상에 부러울 게 없지만 한가지 아쉬운 건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석근 스님이 부러워죽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민 진사 어른을 가장 팔자 좋은 분이라 하는데.” 민 진사가 한숨을 길게 토하며 “천석꾼 천가지 걱정, 만석꾼 만가지 걱정이란 말 못 들어봤소?” 석근 스님이 컬컬 웃으며 “그건 배부른 부자들이 쫄쫄 굶는..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78) 개구리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78) 개구리 아들이 천석꾼 부자가 되라고 천석이라 이름 지어놓고, 아비는 밭 한뙈기 물려주지 않고 역병에 걸려 죽었다. 어미는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바람에 쓸려갔다. 그 할머니마저 이승을 하직하자 혈혈단신 일곱살 천석이는 지독한 고생길에 들어섰다. 다리 밑에서 거지 생활도 하다가 저잣거리에서 똥도 푸다가 짚신장수 집에서 일도 하다가 열여섯살이 되자 머슴으로 들어갔다. 삼년을 뼈가 부서져라 일하고 약속한 새경 나락 육십가마를 받으려 하니 수전노 주인이 스무가마밖에 주지 않았다. 울며불며 별수를 다 써봤지만 허사였다. 관아에 발고하자 주인이 사또 앞에 펼쳐놓은 것은 종이쪼가리였다. 3년 전 한문으로 써놓은 종이에 손도장을 찍으라 해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찍었는데 그게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77) 쥐구멍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77) 쥐구멍 농사일 없는 겨울을 좋아하는 박서방 마누라와 금실 좋게 지내려 하는데… 어떤 사람은 기나긴 엄동설한이 물러나고 남풍이 불어와 새 생명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 하고, 혹자는 햇살이 대지에 내리쬐다가 먹구름이 좌르륵좌르륵 쏟아부으면 하루가 다르게 만물이 쑥쑥 자라는 여름이 계절의 으뜸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후텁지근한 삼복을 밀어내고 상큼한 바람이 불어 오곡백과를 추수하는 가을이 최고라 하지만, 박 서방은 겨울이 가장 좋다. 새벽같이 일어나 논밭으로 달려갈 일 없지, 비가 안 와도 비가 퍼부어도 걱정할 일 없지, 곳간에 곡식은 가득 찼지, 땀에 젖은 옷 입을 필요 없이 비단마고자에 뒷짐을 지고 어슬렁 주막집이나 오가는 낙을 겨울이 아니고서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7) 칠점사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7) 칠점사 칠점사가 잠자던 조대감 바지속으로 그때 행랑아범의 어린 아들이… 바짓가랑이 속으로 개구리를 넣는데 안마당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조 대감이 죽부인을 안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언덕 너머 잔칫집에 다녀와 등목을 하고 안동포 홑바지 저고리만 걸친 채 술에 취해 땀에 취해 코를 골았다. 그때 언년이가 대감나리가 깰세라 고양이 걸음을 걷다가 소스라쳐 주저앉았다. 기다란 뱀 한마리가 평상에 올라 조 대감 바지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하인들이 우 몰려들고 안방마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꼬리가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행랑아범이 말했다. “칠점사야!” 칠점사는 몸집이 큰 맹독성 뱀이다. 어떤 하인은 시퍼런 낫을 들고 오고, 침모는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6)행랑아범 아들, 마당쇠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6)행랑아범 아들, 마당쇠 .. 악랄하기로 소문난 부자 노참봉 그에 버금가는 잔인한 둘째 아들 추운 새벽녘에 행랑아범 불러내 찬물을 퍼붓는데… ​노 참봉은 만석꾼 부자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가는 패악의 화신이다. ​그의 악행은 끝이 없다. 장리쌀을 놓아 남의 논밭을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반반한 소작인 마누라 겁탈하기, 논 한마지기 떼주고 남의 딸 사와서 노리개 삼기, 고리를 놓았다가 남의 집 가로채기…. 한터의 그 넓은 들이 모두 노 참봉 논밭이고 사이사이 박힌 백여호의 세칸 초가집은 하나같이 노 참봉의 소작농이다. ​더 큰 문제는 노 참봉 삼남매의 패악질이 제 아비를 뺨친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머리에 돌이 들어 있어 서당에도 다니지 않고 저잣거리 왈패들과 어울려 온갖 못된 짓..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6) 수달토시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6) 수달토시 땔감을 사간 아낙네의 집에서 나무꾼 만복이 먹고자며 장작 패는데 나무꾼 총각 만복이가 장터에서 한지게 가득한 나뭇짐을 지게작대기로 고아놓고 그 옆에 앉았는데 비단 치마에 검은 장옷을 걸친 고운 아낙네가 물었다. “얼마요?” “참나무라 한지게에 오전입니다요.” “한지게만 살 것이 아니라 뒤꼍 처마 밑을 가득 채우려니 에누리 좀 해주시구랴.” “그렇다면 아궁이에 넣기 좋게 톱질 도끼질을 해서 처마 밑에 쌓는 것은 공짜로 해드리겠습니다.” 만복이는 지게를 지고 아낙네를 따라갔다.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 외따로 떨어진 기와집이었다. 이튿날부터 만복이는 십리나 떨어진 집에서 참나무를 지고 와서 아낙네 집 뒤꼍에 부려놓고 굴뚝에 바를 정(正) 자를 써나갔다. 서른지게를 부려놓으니..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4) 천석꾼 천가지 걱정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4) 천석꾼 천가지 걱정 민진사와 곡차 친구인 석근스님 천석꾼 부자에 경국지색 부인을 둔 그를 부러워하는데… 석근 스님과 민 진사는 곡차 친구다. 암자에서 나올 때 암자로 들어갈 때 석근 스님은 어김없이 민 진사 집에 들러 술잔을 따르며 고담준론을 나누고 시를 짓고 사군자를 쳤다. 허우대가 훤칠한 민 진사는 천석꾼 부자에 경국지색 부인을 둬 세상에 부러울 게 없지만 한가지 아쉬운 건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석근 스님이 부러워죽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민 진사 어른을 가장 팔자 좋은 분이라 하는데.” 민 진사가 한숨을 길게 토하며 “천석꾼 천가지 걱정, 만석꾼 만가지 걱정이란 말 못 들어봤소?” 석근 스님이 컬컬 웃으며 “그건 배부른 부자들이 쫄쫄 굶는..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5) 귀동이 아비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5) 귀동이 아비 주색잡기에 빠진 남편 때문에 ‘과부 아닌 과부’가 된 풍천댁 시댁에서 나와 요릿집 차리는데… 풍천댁은 수심이 깊다. 꿈 많은 처녀적엔 양반 대갓집 일등 규수로 별당에서 사군자를 치고 대감댁 둘째 아들에게 시집갈 땐 뭇사람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지만 호강은 거기까지였다. 시집온 지 1년이 지나자 입덧도 하지 않는다고 시집 식구들이 의아해하는 눈초리를 보내더니 만 2년이 지나자 모두가 싸늘해졌다. 신랑이라는 인간은 허구한 날 주색잡기에 빠져 신부 방에 발길을 끊으니 풍천댁은 과부 아닌 과부가 되었다. 모란 향기가 코끝을 감돌고 나비도 산새도 짝짝이 노니는 걸 보고나면 그날 밤은 바늘로 허벅지를 찔렀다. 신랑이 첩살림을 차리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자 풍천댁은 석녀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3) 큰 창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3) 큰 창피 가난한 선비 이초시 영리하고 착한 외동딸 시집 보내고… 보고싶은 마음에 사돈댁으로… 가난한 선비 이 초시는 동네 학동들 훈장 노릇에 남의 제사에 지방을 써주고 초상집 비문도 써주며 입에 풀칠을 해왔다. 늘 쪼들리지만 부인과 단 두식구라 먹고사는 데는 큰 걱정 없지만 자나 깨나 마음 쓰이는 게 시집보낸 무남독녀다. 부인이 딸 하나 낳고 단산을 하는 바람에 이 초시는 어린 딸을 한시도 떼놓지 않고 업고 안고 다녔다. 사람들은 딸 때문에 공부에 소홀했다고 입방아를 찧지만 이 초시의 끔찍한 딸 사랑은 말릴 도리가 없었다. 딸아이도 제 어미한테서는 젖만 빨아먹고는 쪼르르 제 아비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이 초시 딸 설이는 자라면서 인물도 옥골이었지만 머리가 영리하기 짝이 없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1) - 쏟은 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1) - 쏟은 물 마누라 북후댁의 지극정성 내조에도 여덟번이나 과거에 낙방한 이초시 암자에서 공부하다 집에 왔더니… 찢어지게 가난한 초가삼간 살림에 일곱번이나 과거에 미끄러진 이 초시에게도 살길은 있다. 이 초시 마누라 북후댁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자신은 사흘을 굶어도 남편은 한끼 안 거르고 있는 것 없는 것 차려 상을 올린다. 바느질감 받아 밤을 새우고도 남의 집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뼈가 부서져라 일해 살림을 꾸린다. 가을이 되면 친정으로 달려가 올케 눈치 보며 목이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바리바리 이고 지고 온다. 이만큼만 해도 복덩어리인데 인물 또한 빼어나 사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초시도 염치가 있는 선비다. 마누라 북후댁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얼마나 착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