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0)뚱순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0)뚱순이 어려서 먹세가 남달랐던 뚱순이…혼기가 차도 식욕은 여전… 어느날 돌팔이 허도사를 만나는데 사람들은 동순이를 뚱순이라 부른다. 이진사의 고명딸 뚱순이는 태어나자마자 먹세가 남달랐다. 제 어미 두개의 젖무덤을 납작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염소 젖을 한사발씩 마셔댔다. 젖도 일찍 떼더니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다섯살 적에 벌써 고봉밥을 뚝딱 해치웠다. 이진사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아 등에 업혀 장터에 가면 노리개며 색동저고리·나막신 같은 것은 본체만체, 깨엿· 갱엿·찹쌀떡·약밥 등을 닥치는 대로 입으로 넣기에 바빴다. 동순이 네살 때 사람들은 이름을 뚱순이로 갈아치웠다. 할머니는 주문을 외웠다. “우리 동순이는 곳간이 그득한 부잣집으로 시집가야 해. 아무리 먹어도 쌀독이 축나지 않..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8) 사주팔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8) 사주팔자 조실부모한 구두쇠 월천꾼 팔목이…허대사에게만은 월천삯 안받아 어느날 팔목의 생시 듣고난 허대사…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드는데… 구월천엔 배도 없고 다리도 없어 오가는 길손들은 바짓가랑이를 한껏 올리고 스스로 건너든가 아니면 월천(越川)꾼 등에 업혀가는 수밖에 없다. 이곳 월천꾼 팔목이는 부지런해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개울 옆을 지킨다. 팔목이는 알부자로 소문났다.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자라며 ‘돈이 없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체득해 제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절대 나가는 법이 없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월천꾼으로 돈을 모으고 겨울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았다. 논밭이 나왔다 하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얼른 낚아채는 사람이 바로 팔목이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7)<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7)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외할머니와 살던 중업…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남자가 칼을 들이대며… 노가와 박가는 앞뒷집에 살며 함께 서당에 다니고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던, 형제보다도 가까운 불알친구였다. 열일곱, 머리가 굵어졌을 때 노가는 부모한테 물려받은 산자락 밭 몇 뙈기에 인생을 묶어둘 수 없다며 대처로 나가버렸다. 전날 밤, 죽마고우 두 친구는 밤새도록 술잔을 주고받았다. 5년 세월이 흐른 어느 초가을날. 고향땅에서 선친이 물려준 논밭에 땀 흘려 씨 뿌리고 얌전한 마누라 얻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를 두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박가 앞에 노가가 나타났다. 노가는 차림새도 세련되었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동네의 형제들 집을 두고 박가네 사랑방에 똬리를 튼 노가는..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6)나쁜 어른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6)나쁜 어른들 단아한 백면서생 열세살 청수…어느 밤 뒤뜰 별당을 엿보니 의젓하고 엄하신 아버지와 얌전한 요조숙녀 어머니가… 청수는 천석꾼 이진사의 열세 살 삼대독자로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 깎아놓은 밤처럼 단아한 백면서생이다. 아버지 이진사는 한점 흐트러짐 없이 사랑방에서 글만 읽는 고고한 선비이고 어머니 유씨도 잠은 안방에서 혼자 자지만 낮엔 연못이 딸린 별당에서 사군자를 치고 처마 아래 매화 가지를 다듬는 요조숙녀다. 청수는 글도 뛰어나 서당에서 또래 학동들보다 서너 걸음 앞서가 훈장님의 칭찬을 한몸에 받는다. 집에서도 도포차림에 유건 쓰는 걸 잊지 않는 아버지 이진사의 본을 받아 청수도 삼복더위에 세모시적삼을 벗는 법이 없었다. 청수는 결벽해서 서당의 다른 학동이 그의 책을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5)담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5)담판 마음 씀씀이가 후덕하지만 자식이 없던 선주 이초시 집에 식솔 딸린 선장 진백이 함께 사는데 조기잡이철 바다에 나갔던 진백이… 선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이초시는 점잖은 선주다. 다섯척의 황포 돛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올 때면 소와 돼지를 잡고 술을 독으로 날라 선원들에게 잔치판을 벌여준다. 이초시는 마음 씀씀이가 후덕해 노련한 뱃사람들이 그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제물포에 있는 드넓은 이초시집은 항상 사람들로 들끓었다. 별채가 여럿 있어 총각선원들도 살고, 식솔이 딸린 선장도 한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세살, 다섯살, 일곱살 아들 셋을 둔 용왕호 선장 진백이도 별채에 삼년째 살고 있다. 이초시는 동년배 진백을 워낙 신임해 집사노릇까지 맡겼다. 이초시 부인도 사람이 좋아 선원..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4)<죽은 건 살고 산것은 죽고>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4) 혼인후 애 셋 낳고 십년 지나니 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어 부아가 치민 음실댁은… 음실댁은 우물가에만 가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우리 신랑 때문에 못 살겠어. 밤이고 낮이고 나만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치마를 걷어올리려 드니 말이야.” 송산댁의 즐거운 비명에 기다렸다는 듯 막곡댁이 “어제 낮에 부엌에서 연기에 코를 막고 밥을 푸는데 글쎄 애 아빠가 들어와 바지춤을 내리고 달려들지 뭔가, 한 손에 밥주걱을 들고 다른 손엔 밥그릇을 든 채 꼼짝없이 당했지 뭐야.” 모두 까르르 빨랫방망이를 놓고 배꼽을 뺐지만 음실댁은 부아가 치밀었다. “아지매는 아제가 가끔 안아줘요?” 나이 지긋한 아지매는 빙긋이 웃으며 “너희는 안팎으로 토끼 새끼들이여. 부엌에서고 안방에서고 파르르 떨..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0) 장맛비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0) 장맛비 똑소리 나는 이초시의 외동딸 ‘득순’ 신랑 될 ‘구식’이 공부하는 절 찾았다 집에오는 길 비 쏟아져 다시 돌아가 첫날밤 치른 득순, 뭔가 허망한데… 이초시의 외동딸 득순이를 동네 사람들은 똑순이라 불렀다. “아지매, 콩 한되 주이소.” “와?” “아제가 우리 소를 한나절 부려먹더니 소가 힘이 쪽 빠져갖고 소죽솥에 콩 한되 넣어줘야 되겠심더.” 일곱살 똑순이는 부모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어이 콩 한되를 받아와서 소죽솥에 넣었다. 똑순이는 동네 서당에 다니는 유일한 여자아이지만 남자 학동들 다 합쳐도 똑순이 하나만 못했다. “모두 불알 떼서 누렁이 줘 버리거라.” 훈장님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김구식이가 그나마 훈장님한테 회초리를 덜 맞는 편이지만 똑순이가 들어갈 때..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9) - 처녀 뱃사공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9) - 처녀 뱃사공 나루터에 나타난 저잣거리 왈패 셋…처녀뱃사공 청명을 희롱하고 숲으로 끌고 가는데…주위 사람들 모두 모른척 왜소한 방물장수 청년만이…고함을 지르며 쫓아갔는데… 뱃사공 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노를 잡아 처녀 뱃사공이 된 열일곱살 청명은 혈혈단신이 되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황참봉네 집사로 일하는 총각 태묵이와 눈이 맞은 것이다. 황참봉네 논밭은 월곡천 건너에 산재해 있어 가을이면 집사인 태묵이가 작황을 보고 소작료를 책정키 위해 매일 청명의 배를 탔다. 어느 가을날, 마지막 배로 강을 건너고 나루터에 배를 묶는데 내 건너에서 태묵이가 소리쳤다. 후두둑 찬비가 내리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청명이는 배를 풀어 내를 건너 태묵이를 태워 왔다. 가을비가 사납게 쏟아져 태묵..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6) 정선사또는 울고 그의 처는 뺨을 맞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6 정선사또는 울고 그의 처는 뺨을 맞다 집안 볼것없는 박대근 허우대만 멀쩡 천석꾼 최부자의 외동딸과 하룻밤 보낸후 헛구역질하자 혼례 빈둥빈둥 거리던 박대근 최부자 돈으로 처외당숙에게 줄대 첩첩산중 정선사또가 됐는데… 집안 볼 것 없고 배운 것도 변변찮은 박대근은 허우대 하나만은 타고났다. 어깨가 떡 벌어진 팔척 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의관을 차려입고 저잣 거리로 나서면 속은 비어 있어도 겉모습은 위풍 당당하다. 말솜씨 또한 그럴듯해서 수중에 땡전 한닢 없어도 헛기침을 크게 하고 주막에 들어가 툭툭 주모의 엉덩이를 치며 입으로 구슬려 얼큰하게 취해서 나오는 것이다. 박대근은 천석꾼 최부자의 무남독녀 외동딸 오순을 달 밝은 밤, 물레방앗간에서 제 손으로 옷고름을 풀게 하였다. 최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8) - 역적의 딸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8) - 역적의 딸 절친한 친구인 박대감과 오대감…15년후에 사돈되기로 혼약 맺어 사화의 광풍에 오대감 죽게 되지만 두대감의 자식인 용이와 수빈아씨… 약속대로 암자에서 몰래 혼례 치러 하지만 반대하는 용이 어머니는… 3대 독자 외동아들의 혼사문제로 박 대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술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건만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은 안 오고 소쩍새 소리만 박 대감의 마음을 쥐어짰다. 15년 전 바로 이 방에서였지. 박 대감과 오 대감은 어릴 적부터 한 서당에 다니며 둘도 없는 친구로, 그리고 함께 급제하여 나란히 나라의 녹을 먹었다. 세월이 흘러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어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짓고, 사군자를 치고, 어릴 적 서당 다닐 때 장난치던 일을 떠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