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130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7)우물가의 나막신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7)우물가의 나막신 재물·처자식 남 부러울 것 없는 천하의 악성 난봉꾼 ‘조도필’ 빨래터서 만난 천하일색에 반해 몰래 뒤따라 가는데… 난봉꾼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양성(良性)이고 다른 하나는 악성(惡性)이다. 난봉꾼이라면 다 같이 못된 것들이지 거기에 무슨 양성과 악성이 따로 있는가 할지 모르지만 분명코 두 부류는 다르다. 양성 난봉꾼은 조강지처에게 죄를 짓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상대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을뿐더러 딴에는 적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치들이 상대하는 여자는 저잣거리에서 술장사하는 들병이, 선술집에서 동한 술손님 상대하는 은근짜, 가무보다 매음이 본업인 삼패 기생…. 소위 ‘만인의 연인’들이다. 그러나 악성 난봉꾼은 다르다. 감언이설로 총각 행세를 하며 여염집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6)애꾸가 내일을 보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6)애꾸가 내일을 보다 흉년이 들어도 지독한 가뭄에도 천석꾼 황첨지는 빙긋 손윗사람 하대하는 안하무인이지만 반미치광이 백가는 깍듯이 모셔 어느날 동학란 중 도망쳤다가 붙잡혀 광장에 꿇어앉아있는데… 흉년이 들면 농사꾼들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지만 천석꾼 부자 황 첨지는 빙긋이 웃는다. 지난해는 지독한 가뭄으로 보리는 싹도 나지 않았고 콩은 겨우 난 싹이 메말라 고개를 꺾었다. 논은 거북 등처럼 갈라져 모가 하얗게 쪼그라들었다. 황 첨지네 논밭이라고 비가 뿌렸을 턱이 없지만 그는 희희낙락했다. 그 전해에 추수해놓은 보리섬, 콩섬, 나락가마가 곳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 첨지는 곡식을 내다 팔지 않는다. 기다리면 더 큰 횡재수가 줄줄이 엮여 들어온다. 보릿고개까지 갈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4) - 산골짝 외딴집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4) - 산골짝 외딴집 한양가던 선비, 한밤중 산길 헤매다 혼자 사는 과부 집에서 보내기로 밥 얻어 먹고 잠을 청하려는데 부엌에서 나는 물소리 방에 누웠지만 마음은 이미… 상강(霜降)이 지나자 밤공기가 싸늘해졌다. 선비는 발길을 재촉했지만 가도 가도 시커먼 산골짝엔 불빛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식은땀을 닦으며 산허리를 돌자 가느다란 불빛이 깜박거린다. ‘이제는 살았구나.’ 선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를 건너 갈대밭을 헤집고 사립문까지 다다랐다. “주인장 계시오? 문 좀 열어주시오.” 선비의 고함에 안방 문이 열리고 아낙이 나왔다. “이 밤중에 누구를 찾으러 오셨는지요?” “한양 가는 길손입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단양에 닿을 줄 알았는데 산속만 헤매다가 불빛을 보고 불고염치….”..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3) - 외상술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3) - 외상술 알뜰하고 길쌈솜씨 좋은 복덩어리 음실댁 각시로 맞아 해마다 땅 늘리는 재미 쏠쏠한데 남편 권서방은 장날마다 술타령… 술값 필요했던 권서방 어느날 묘한 궁리를 짜내는데… 권 서방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초가삼간에 화전 밭뙈기 몇 마지기뿐인데 운 좋게도 복덩어리 음실댁을 각시로 맞아들였다. 음실댁은 마음씨 곱고, 인물 또한 빠지지 않고, 지아비 권 서방을 하늘처럼 받들고, 무엇보다 살림 솜씨가 빈틈이 없는데다 길쌈 솜씨는 조금 게으른 여자 세 몫을 한다. 감자와 조를 심어 나물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권 서방은 이제 쌀밥에 가끔 백숙까지 먹는 팔자가 되었다. 각시 음실댁의 권유로 권 서방은 얼마 되지 않는 밭이란 밭에 모조리 삼농사를 짓는다. 여름이면 권 서방과 음..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2)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2) 추석날 생긴 일 지난 설, 장인·장모의 사기 골패로 첫째·둘째 사위 돈 왕창 털려 추석 전날밤 첫째 사위, 애들 동원해 암호 짜고 둘째 사위는 마누라와 고민하는데… 추석 전날 밤, 맏딸 집. “자∼, 마지막으로 연습해보자.” 맏사위가 안방에 요를 깔고 골패판을 준비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맏딸이 접시를 들고 오며 “여보, 쑥송편 하나 들고 하시오”라고 하자 맏사위가 “생각 없어” 하며 손에 들고 있던 백오 패를 던졌다. 맏딸이 목소리를 높인다. “여보, 쑥송편은 오륙 패인데 백오 패를 던지면 어떡해!” 맏사위가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 맏딸이 묻고 맏사위가 답했다. “콩송편?” “어사!” “물김치?” “주륙!” “식혜?” “직흥!” “또 틀렸어, 또! 식혜가 어떻게 직흥 패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1) - 회갑선물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1) - 회갑선물이대감 얼굴에 먹칠하고 다니는 늦둥이 막내아들 결국 집나가… 5년만에 여인 둘을 데리고 와서 한사람은 아내라 소개하고 또다른 색시를 인사시키는데 이 대감은 딸 하나 아들 셋이 있다. 맏딸은 유 대감 댁으로 시집가 조신한 신부로 잘 살고 있고, 맏아들은 천석꾼 집안 살림을 꾸려가고, 둘째 아들은 급제하여 부사로 봉직하고 있는데, 늦게 본 열여섯살 막내아들이 이 대감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막내아들 항곤은 어릴 때부터 낮이면 서당을 빼먹고 못된 친구들과 저잣거리를 배회하고 밤이면 닭 서리를 도맡아 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더니 색줏집에 출입하며 곳간의 곡식도 퍼가고 제 어미 농 속의 주머니도 뒤지고 끝내는 이 대감 방에 있는 다락 속의 전대에도 손을 댔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0) - 기둥서방 여럿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0) - 기둥서방 여럿 첩만 보는 남편떠나 포목점 연 이월댁 비단도매상 박대인과 거래 텄는데 접대 못해 ‘을’ 설움 톡톡 어느날 이월댁이 잔뜩 치장하고 박대인을 안방으로 모셔… 이월댁은 오늘 밤도 방구들이 깨져라 한숨을 쉰다. 창을 열자 달빛이 하얗게 들어와 금침에 내려앉고 짝을 찾는 풀벌레 소리는 애간장을 녹인다. 서른둘, 농익은 여인은 허벅지를 꼬집어보지만 허사다. 남편이란 게 첩을 둘씩이나 얻어 집엔 아예 발길조차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이월댁은 보따리를 쌌다. 사랑방 시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올렸더니 후덕한 시아버지가 꽤나 묵직한 전대를 꺼내 이월댁에게 건넨다. 이월댁은 눈물을 흩뿌리며 시집을 나와 삼십리 밖 친정으로 갔다. 친정살이가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니 올케 눈치가..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9)땅속에서 올라오는 부처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9)땅속에서 올라오는 부처 마을 사람들이 주막에 모여 노랑이 황 참봉을 욕하는데 엿듣던 땡추는 비웃기만… 어느날 황 참봉네 선산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돌부처에 사람들이 몰려와 엽전 던지는데 “그놈의 황노랑이, 자기 혼자서 다리를 놓아도 놓을 텐데….” 주막집에 모여서 막걸리를 퍼마시는 동네 사람들의 안주는 천하의 노랑이 황 참봉이다. 동네 앞 개천의 외나무다리가 떠내려가자 돌다리를 놓기로 의견을 모은 동네 사람들이 삼천석지기 부자인 황 참봉에게 비용을 반쯤 부담하라고 통사정했지만 황 참봉은 다른 집과 똑같이 내겠다는 것이었다. 석수장이 일곱이서 개울가 바위를 깨고 동네 사람들이 거든다 해도 한집에 나락 두가마니씩을 내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가난한 집들은 당장 겨울나기가 막..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8)동업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8)동업 단짝 친구인 정기와 영배 동업하기로 결의하고 한양으로 가던 길에 보물주머니를 주웠는데… 정기와 영배는 단짝 친구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딴판으로 영배는 천석꾼 부잣집 아들이고 정기네 아부지는 영배네 집사로 일하며 근근이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 또 한편 정기는 서당에서 벌써 사서삼경을 뗐는데 영배는 아직도 사자소학에 매달려 있다. 어느 날 훈장님의 회초리를 맞던 영배가 “나 공부 안 해”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집으로 가버렸다. 그날 저녁 정기가 영배의 책 보따리를 들고 영배네 집에 가자 영배 아부지 권 참사가 정기를 사랑방으로 불렀다. 정기가 꿇어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담배를 길게 빨던 권 참사가 정적을 깼다. “너도 우리 영배와 동갑이니 열여섯살이지?” “네. 어르신…..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7)쥐뿔도 모르면서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7)쥐뿔도 모르면서 집에 들어가 안방문 연 서서방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부인과… 서로 진짜라고 우기더니 결국 진짜 서서방이 쫓겨나 목매려던 차에 만난 스님 보따리 하나를 싸주는데… 서 서방이 동구 밖 주막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발가벗은 마누라가 밑에 깔렸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간부(姦夫)가 그 위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서 서방은 다듬잇방망이를 치켜들고 고함쳤다. “웬 놈이냐!” 하지만 연놈들이 도리어 성을 냈다. “밤중에 남의 집 안방에 쳐들어온 네놈이야말로 날강도가 아니냐!” 때아닌 소동에 온 식구들이 깨어나 안방으로 몰려들었다. 이럴 수가! 서 서방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누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