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456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

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누군가 주변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축복받고 감사한 일이지요.뉴욕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활달한 세 쌍의 젊은 남녀가 탔습니다.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바로 출발했습니다.세 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떠들고 웃어 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습니다.그들 앞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습니다.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 없는 얼굴..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습니다.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

감동글 2024.10.01

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  일평생 동안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제대로 된 검사도 한 번 받지 못하다가중년의 나이가 되어삶이 안정되었을 때가 되어서야생전 처음으로 안과 병원을 찾아검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놀랍게도 수술만 하면시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겠다는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비용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더니앞을 보게 되는 시력 회복수술을포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평생소원인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인데갑자기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왔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에게는 스무 살에 만나 결혼해서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

감동글 2024.10.01

노인의 지혜

노인의 지혜조선시대 9대 임금인 '성종'(1457~1494) 때,어떤 사람이 일찍이 딸 하나를 낳아 길러서 시집보낸 후 노년에 늦게 아들을 하나 보게 되었다.안타깝게도 노인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죽을때가 되었는데 아들은 아직 '강보'에 싸여 있는어린 아이였다.  노인은 죽으면서 유언을 하여 전 재산을 시집간딸에게 모두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자기자신의 얼굴 모습이 그려진 족자 1개만 주었다.딸은 친정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으니살림은 넉넉해졌지만 살길이 막막한 친정의어린 동생이 가엾어서 동생을 데리고 와서자기 자식처럼 돌보아 길렀다.  노인의 아들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자 과거부친이 돌아가실 때 모든 재산을 누나에게다 주고 자기의 몫은 족자 하나뿐이었다는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족자를..

감동글 2024.10.01

감사(感謝)하는 생활(生活)

감사(感謝)하는 생활(生活)유종해(연세대 명예 교수)님의 글올해로서 내 나이 92세(歲)가 되어,  제법 장수(長壽)의 사람이 된 것 같이 생각되었으나,우리 학교(學校)의 선배(先輩) 김형석 교수(敎授)가 105살인데얼마 전 “백년(百年)을 살아보니”란 책(冊)을 써서,받아 읽어 보니 두 가지를 강조(强調)하였다. 첫째는감사(感謝)하며 살 것, 둘째는모범(模範)이 되는 생(生)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하였다. 기독교(基督敎)를 믿는 선배교수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장수(長壽)를 자랑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였다.여기 에피소드를 소개(紹介)하고 싶다. 세계적(世界的)인 대문호(大文豪) *셱스피어가, 점심식사(點心食事)를 하기 위해 한 식당(食堂)에 들어갔습니다.그때 홀 안에서 음식(飮食..

감동글 2024.10.01

행복의 씨앗

행복의 씨앗한 부유한 노부인이 저명한 심리학자를 찾아가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고민 상담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삶에 아무 불편이 없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요리사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힘든 집안일은 가정부와 집사가 해결해 주며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운전기사가 있어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좋아하는 꽃을 가꾸며여유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노부인의 말을 들은 심리학자가부드럽게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평안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고 계시는데부인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노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지만 행복하지 않아요.항상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면 부인이 가장 아끼는 아름다운 꽃들을아무도 모르게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해 보..

감동글 2024.10.01

축의금 만삼천원

축의금 만삼천원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가 보이지 않았다.'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시간이 넘게 걸렸어요.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석민이 아빠는 못 왔어요. 죄송해요...대신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엄마의 낡은 외투를 뒤집어쓴 채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리어카 사과 장사이기에이 ..

감동글 2024.10.01

세탁소의 사과문

세탁소의 사과문어느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서 불이 났습니다.불은 세탁소 전부를 태웠고, 며칠이 지난 후아파트 벽보에는'사과문' 하나가 붙었습니다.사과문에는 불이 나 옷이 모두 타서죄송하다는 이야기와 옷을 맡기신 분들은옷 수량을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공고가 붙은 후,한 주민이 공고문 아래에 글을 적고 갔습니다.당연히 옷 수량을 적어 놓은 글인 줄 알았지만뜻밖에도 '아저씨! 저는 양복 한 벌인데 받지 않겠습니다.그 많은 옷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용기를 내세요' 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그 주민 말 한마디에 아파트 주민들이 속속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그 후 누군가 금일봉을 전했고,금일봉이 전달된 사실이 알려지자또 다른 누군가도 또 다른 누군가도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고 합니..

감동글 2024.10.01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조지 워싱턴(1732 - 1789)이군대에서 제대하고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여름날 홍수가 범람하자물 구경을 하러 나갔더랍니다.물이 넘친 정도를 살펴보고 있는데육군중령의 계급장을 단군인 한 사람이초로(初老)의 군인워싱턴에게 다가왔습니다.미안합니다만제가 군화를 벗기가 어려워서 그런데요제가 이 냇물을 건널 수 있도록저를 업어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뭐!~ 그렇게 하시구려이리하여 중령은워싱턴의 등에 업혀서냇물을 건너게 되었습니다.노인께서도 군대에 다녀오셨나요?네 다녀왔지요.사병이셨습니까?장교였습니다혹시 위관급(尉官級)이셨습니까?조금 더 위였습니다아니 그러면 소령이었나 보네요조금 더 위였습니다그럼 중령이셨군요조금 더 위였습니다아니 대령이셨단 말씀이십니까?조금 더 위였습니다아니 그럼 장군이셨..

감동글 2024.09.30

100만불의 뇌물

100만불의 뇌물 1. 한국의 월남 전 참전 후 그로 인해 잠시 소홀해졌던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으로 바뀌었으며     군인들이 목숨걸고 싸워 주는 댓가로 많은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게 되었고 그 지원 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 이었다. 2. 한국이 사용하는 무기는 2차대전 때 쓰던    단발식 카빈과 M1 소총으로서 M-16 자동 소총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그야 말로 구닥다리 무기였으며   당시 한국군은 그런 무기로 첨예한 남북 대치 상황을   지키고 있었다.3. 한국이 월남전에 군 병력을 파병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파병군이 사용하던 무기는 철수시 모두 갖고 들어 오며   더불어 M16 자동 소총을 국내에서 제조할 수 있게   기술 이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

감동글 2024.09.30

두 여인 이야기

두 여인 이야기내가 종로구 필운동 사직공원 옆에 살 때,만난 장여사는 한국일보 여기자였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남편은 총 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밤중에 산 넘고, 걷고 걸어서 두 여인은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여고를 졸업한 두 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여사는 한국일보의 유명한 기자로.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 중ㆍ경기고ㆍ서울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나사 미항공우주국에 취직 후 계속 공부하여하버드대 교수 등. 공부 벌레로 성공했다.   장여사와 만나면,장여사는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35년 전 이야기다.   서울대학 시절..

감동글 2024.09.22